[데스크라인]철의 장벽을 넘는 인터넷

 1961년 5월 16일 새벽 4시. 약간의 총격전 끝에 서울 입성에 성공한 반란군은 곧바로 중앙청과 서울중앙방송국을 향해 진격했다. 5시 첫 방송시보와 동시에 거사의 명분을 밝히고 6개항의 혁명 공약을 발표했다. 5·16 쿠데타다.

 쿠데타 세력이 방송부터 장악하는 건 전통(?)이다. 지난해 9월 19일 밤, 손티 장군이 이끈 태국 군사 쿠데타 세력은 정부청사와 함께 국영 및 민영 TV와 라디오방송사를 장악했다. 방송으로 즉각 쿠데타 성공을 선언했다. 동시에 외부에 쿠데타 소식을 전하는 CNN과 BBC 방송 송출을 중단시켰다.

 방송 장악은 원치 않은 정보 유통을 막기 위한 것이다.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반발 세력을 바깥 세상과 격리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군사 정변 이후에도 지속된다. 그들이 안정됐다고 판단할 때까지는….

 미얀마(옛 버마) 군사정권이 대표적이다. 지난 1988년 대학생의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군사정권 ‘준타’는 방송을 계속 장악하면서 정보를 통제해왔다. 이 나라에 19년 만에 또다시 민중 시위가 일어났다. 준타는 또다른 통제기법을 선보였다. 바로 통신 끊기다.

 처음에는 국제전화를 끊더니 나중엔 인터넷까지 막아버렸다. 인터넷으로 자국의 시위 모습과 진압 현장이 고스란히 세계로 알려지자 당황한 준타의 행동이다. 결과는 효과적이었다. 현지에서 취재 중인 기자들은 시위 사진이나 영상을 보낼 길이 없어 이따금 열리는 국제전화를 이용해 말로 전달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나 미얀마 군사 정권도 해외 블로그까지 막을 수 없다. 영국에 유학 중인 ‘코 흐티케’라는 이름의 미얀마 청년은 친구를 포함해 현지인 40여명으로부터 받은 사진과 정보를 자신의 블로그(ko-htike.blogspot.com/)에 실으면서 현지 참상을 고스란히 전했다. 물론 인터넷 차단 이후 그의 블로그는 사진을 싣지 못했지만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며 현지 특파원 몇십명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망명 미얀마인도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준타가 뒤늦게 인터넷을 차단했지만 폭력적인 강경 진압 장면은 이미 전 세계로 퍼져나간 다음이다. 국제 여론의 압력도 한층 거세어졌다. 준타 세력은 아마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인터넷부터 잘라야지”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

 미얀마 전문가인 메리 캘러핸 워싱턴대학 교수는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인터넷의 영향으로) 예전과 달리 군부가 시위대를 막는 게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일 방북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직통 라인으로 국가지도통신망을 이용한다고 한다. 북한에 체류하면서도 국군 통수권자로서 통신을 지휘한다는 얘기다. 대통령 수행원들도 직통 선로로 인터넷을 이용할 것이라고 한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GSM 휴대폰 30대를 임대받아 직접 통화도 가능하다고 한다. 통신 소통만 놓고 보면 지난 2000년 정상회담과 비교해 획기적인 진보다.

 북한이 어떤 곳인가. 웬만한 나라에 다 있는 자국 인터넷도 두지 않는다. 중국을 경유한다. 사전과 사후 검열은 말할 것도 없다.

 개성공단만 해도 인터넷을 쓸 수 없다. 개성공단 사람들은 간단한 서류라도 USB 등을 거쳐 모두 인편으로 전달하는 실정이다. “제한적으로라도 인터넷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다. 북한의 .kp 도메인이 최종 등록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개방은 아니다. 미얀마보다 더한 통신 통제 국가가 바로 북한이다.

 남북 정상이 7년 만의 회담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큰 걸음이 있기를 바란다. 그 첫걸음이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 교류와 개방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미얀마 사태나 국내의 친북 사이트 차단 논란을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