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의 빗물을 모아두는 무성한 숲과 튼튼한 댐이 메마른 겨울철에 우리의 생활을 풍성하게 만들듯이, 인간의 경험과 생각 역시 잘 기록해두면 나중에 그 사회와 문화를 발전시키는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
우리 대한민국은 지난 50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 100년 이상 걸리던 것을 우리는 그 절반의 기간에 이룩했다. 남들이 한 계단씩 걸어 올라갈 때 우리는 두 계단씩 뛰어오른 것이다. 빠르게 뛰어오른만큼 꼭 있어야 할 것들이 빠져 있다는 아쉬움도 떨쳐버릴 수 없다. ‘동방예의지국’이던 우리나라에서 최근에는 인성교육의 부족이나 윤리·도덕이 문란하다는 걱정이 많아졌다. 새로운 ‘인터넷’의 부작용도 늘어나고 있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민족은 이 세상 어느 민족에 비할 데 없이 힘들고 거칠었던 격동의 시기를 헤쳐 온만큼 ‘넓고 기름진 정신적 영토’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에 관한 기록은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진보한 사회일수록 다양한 가치관이 존중받고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아무리 한 시대를 풍미한 가치관이라 하더라도 일방적·교조적이거나 단일한 가치관은 시간이 지나면 예외 없이 다양화됐다. 이런 점에서도 기록은 위대한 일이다. 기록은 어려운 시대에도 썩지 않고 살아남아 두고두고 후손의 지침이 되고 양식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기록을 남기는 일에 도전해보자. 이 일은 우리 민족의 가치관을 다양화하고 정신적 자산을 풍성하게 하는 천년 대업이다. 더구나 기록은 많은 사람에게 그들의 존재 가치를 높여주고 나아가 스스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욱 정진하게 하는 좋은 동기가 될 수 있다.
전체의 이익과 공동의 목표를 위해 많은 사람이 같이 노력했지만 그 평가와 혜택은 소수의 몇 사람에게 독점되는 것이 그동안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사실은 나름대로 각자의 일을 맡아 최선을 다해왔던 ‘대다수의 조용한 사람(silent major)’에게도 조명이 비춰져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누구나 자신만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일도 많다. 일의 시작·과정·결과의 상세한 기록이 없다 보니 많은 사람이 ‘올바른 과정보다는 성공한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같다. 그때그때 정확한 기록이 없다 보니 주장하는 사람이 다수거나 목소리가 크면 그 내용이 올바르지 않거나 진지하지 못한 일도 괜찮은 것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 그런 것은 결코 진리와 정의가 아니다. 기록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일 뿐이다. 우리 모두 기록으로 성공이나 큰 소리가 대세가 아니라 옳은 것이 대세가 되도록 해야 한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도래로 기록하는 방법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도 쉽고 빠르게 자기 기록을 만들 수 있고 자기가 만든 기록을 남에게 보여주거나 저장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술과 방법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과거처럼 승리자만이 기록을 남길 수 있거나, 권력자가 마음대로 보통사람의 다양한 기록을 조작하거나 통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누구나 조금만 애쓰면 그리 어렵지 않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 모두 기록하자. 그리고 그 기록을 남기자. 아무리 힘든 삶일지라도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가치 있는 것처럼, 불완전한 기록일지라도 기록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훌륭하다. 기록은 여러 가지 분야에서 가능한 한 많아야 하고 같은 분야라도 서로 다를수록 좋을 것이다. 다소 부족한 기록이라도 분명 가치가 있으며 세월이 지날수록 그 가치는 더 커진다. 기록으로 남겨진 우리의 삶은 모두 아름답다.
◆정홍식/LG데이콤 부회장 hsjung@lgdaco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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