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트렌드]인터넷, 아고라의 복원인가 편가르기의 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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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지 않거나 동시에 만날 수 없는 시간대에 사는 사람들이 그 제약을 뛰어넘어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인터넷 게시판 공간 때문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평소 각자의 생활반경에서는 도저히 마주치기 힘든 사람들의 의견을 접하게 된다. 각양각색의 논의와 주장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새소식을 듣기위해서, 참신한 시각에 자극받기 위해, 자신의 의견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혹은 그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누리기 위해서 게시판을 찾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토론문화나 정치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가능성 자체는 분명 보다 진보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소중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도구란 사람들이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다르게 활용되는 법. 칼이 물건을 자르는 소중한 도구이자 살상의 도구인 것처럼 인터넷 게시판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인터넷 게시판은 우리 사회의 건강한 토론문화의 정립과 시민적 자질의 개발을 가져오는 도구로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놓지 않고 있지만 극단적인 의견과 상대 비방, 논의 주제와 관계없는 소모적인 논쟁만이 오가는 사실상 영양가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기대를 품고 토론에 참여했다가도 실망하거나 마음에 상처받아 다시는 찾지 않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인터넷을 더 많이 이용하는 사람일수록 동료 네티즌에 대한 신뢰는 더 낮다는 결과도 있다.

 서로 상대의 존재를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없는 가상의 공간에서 편가르기 현상이 더 강하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은 인터넷 공간이 실제 인간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진짜’ 공간, 즉 사회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적(social)인 공간은 사람들이 각 개인으로 따로 떨어져서 존재하고 행동하기보다는 상대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상대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곳을 말한다. 흔히 인터넷을 무엇인가 현실이 아닌 어떤 것(혹은 가짜?)으로 인식하지만 이 공간은 물리적인 토대 위에 존재하지 않다 뿐이지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진짜(real) 공간이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토론을 할 때는 표정이나 몸짓, 혹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이면서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의 의견을 더 강하게 표현하게 된다. 그래야 나의 존재가 드러나고 부각되기 때문이다. 만약 몹시 화가 난 상태라면 표정과 주먹을 보일 수 없으니 글을 통해 더 강하게 나의 입장을 드러낸다. 역으로 상대의 글을 읽으면서는 역시 상대를 볼 수 없으므로 글을 통해서만 상대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유추해낼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의 글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쉽게 규정내려 버리곤 한다. 흔히 어떤 글을 보고 ‘초딩이구나’ 해버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복잡한 공공적인 사안에 관해서 토론할 때는 더욱 그렇다. 사람들의 입장과 시각을 면밀하게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단순한 몇 개의 드러난 단서를 바탕으로 ‘보수’네 ‘진보’네 하는 간단한 단어로 단순화해서 서로를 파악하게 된다. 상대가 나를 그렇게 부르면 어느새 나도 나에게 붙여진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게 (글을 쓰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은 상호적인 것이고 타인이 나에게 보인 반응이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므로 자꾸 어떤 이름으로 단순화해서 불리워지면 그 라벨에 걸맞게 행동하게 된다. 또한 상대와 우리편으로 (혹은 찬성측과 반대측) 갈라지는 경우 우리편이 하는데로 순응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편가르기가 더 쉽게 나타나고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강화되는 것이다.

 인터넷은 너무나도 사회적인 공간이요, ‘진짜’ 사람들이 서로 부딪치고 교류하는 공간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강한 표현과 때로는 욕설이나 비방이 오가는 것도 사람들이 아이디 뒤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이나 우리 편의 입장을 더 강하게 대변하고 두드러지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김은미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unme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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