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런치2.0

 #장면1-용산역 광장. 오늘도 점심때 이곳에 가면 무료 급식을 얻어 먹으려는 노숙자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가운데는 벤처 열풍 당시 전 재산을 올인했다가 버블 붕괴 이후 실업자로 전락하고 결국 집을 나온 이도 있다고 한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인 한 끼의 점심을 위해 기꺼이 자존심을 버린다. 이들에게는 메뉴 선택권이 없다. 그저 점심은 언젠가 있을지 모를 재기를 위해 몸을 지탱하는 ‘끼니 때우기’일 뿐이다.

 #장면2-미국 IT기업들의 총본산 실리콘밸리. 이곳에 둥지를 튼 구글 본사 사옥인 구글 플렉스에 가면 세계 각국의 요리를 무료로 먹기 위한 직원들의 긴 행렬을 볼 수 있다. 본사 5000여명의 직원 가운데 상당수가 해외파 출신이기 때문에 메뉴도 다양하다. 구글은 작년 한 해 구내식당 예산으로만 620만달러, 즉 우리돈 약 60억원을 썼으며 전담 요리사만 100여명을 보유하고 있다. 구글 직원들에게 점심식사는 단순히 식사를 넘어 최고 IT업체로서의 자부심이요 자랑거리다.

 얼마 전 외신은 요즘 실리콘밸리에서는 ‘런치2.0’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처음 몇몇의 엔지니어가 구글·MS 등 구내식당이 맛있는 기업을 찾아다니며 맛집 기행 형식으로 시작한 것이 다른 IT업체의 직원들이 동참하며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물론 순수한 공짜는 아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그 기업의 프레젠테이션을 들어주거나 기업 홍보물을 보고 신제품을 시연해 보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유행처럼 번지자 일부 기업에서는 아예 기획성 이벤트로 열고 있으며 행사를 통해 인력 스카우트도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결국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끼니인 용산역 무료급식과 요리인 실리콘밸리 런치2.0. 침체된 국내 IT 경기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할 뿐이다.

 오늘도 많은 직장인이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하면서 말한다. 오전 일과는 점심을 먹기 위한 전초전이요, 오후 일과는 점심을 소화하기 위한 소모전이라고.

홍승모 글로벌팀장@sm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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