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부터 중국 단둥에서 북한 소프트웨어(SW) 전문가 대상 재교육 프로그램과 SW개발사업을 해온 하나비즈닷컴의 문광승 사장은 남북경제협력 분야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김책공대·리과대학 출신 북한 인재를 대상으로 자바·임베디드·3D·무선 인터넷 등 교육 프로그램을 운용, 남북IT협력의 단초를 열었으며 지금도 북한의 개발인력 등 60여명의 직원과 함께 남측 기업으로부터 SW 개발, 임베디드 솔루션 개발 등을 수주해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오랜 기간의 남북경협 경험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외형은 아직 자랑할 만한 수준이 못 된다. 하지만 그가 남북IT협력사업을 하면서 쌓아온 경험은 소중하다. 문 사장은 서해교전사태나 북한 핵문제가 터지면 많은 지인이 사업에 별 지장이 없냐고 자주 물어온다고 한다. 그러면 문 사장은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정치적 위험요소가 크지 않다고 답해준다. 실제로 큰일이 터져도 북한 개발인력은 정치와 SW 개발은 별개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북한 인력에 대한 문 사장의 신뢰감은 꽤 높은 편이다. 3∼6개월 SW개발 교육을 받고 프로젝트 몇 개 같이하다 보면 어느새 국내 인력과 별 차이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최근 개성공단에 진출했으면 하는 뜻을 내비쳤다. 개성공단에 진출하면 북한의 우수한 개발인력을 비교적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고 남한에서 파견하는 강사진의 인건비나 이동 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북한 인력이 중국에 3개월 이상 체류하려면 취업비자를 따로 받아야 하고 타지역으로 이동하는 데도 제약이 따르는데, 만일 개성공단에 진출한다면 이 같은 불편이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문 사장은 개성공단에 SW개발단지를 조성하는 방안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문 사장이 바라는 SW개발단지 조성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개성공단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아산은 향후 조성되는 2단계 지역과 3단계 지역에 60만평 규모의 IT단지 조성계획을 추진 중이다. 초기에는 하드웨어 기업 위주로 단지를 조성하고 본격 조성 단계에 들어가면 기술집적 단지·정보기술경공업 공단 등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IT단지가 조성되면 SW개발단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SW기업 밀집지역은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IT단지 조성에는 적지않은 걸림돌이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바세나르협약이나 미국의 수출입규정(EAR) 등의 전략물자통제 관련 조항이다. 이 문제가 전향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첨단 IT장비의 개성공단 반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IT단지 조성도 힘들다. 따라서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북미 관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북미관계에 미묘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내 기업들의 인식 전환도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개성공단을 일종의 피난처로 인식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중국·베트남 등 각지를 떠돌다 한계상황에 몰린 국내 기업들이 개성공단을 일종의 피난처로 인식해 입주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을 교정하지 않으면 IT단지의 조성은 정말 꿈 같은 얘기다.
물론 57.5달러(특근 수당을 포함하면 80달러)에 불과한 개성공단 임금수준은 국내 기업에 매력적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개성공단 임금 수준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임금 문제로만 개성공단을 바라봤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업그레이드된 전략을 갖고 개성공단에 접근해야 국내기업에도 해법이 보인다. 한미 FTA 협상문에 규정된 역외가공지역(OPZ)의 인정 여부는 추후의 문제다. SW개발단지조성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장길수 논설위원 ks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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