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숙성(夙成)한 네티즌과 덜 숙성(熟成)된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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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여론 추이를 살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숙성’이다. 이 말은 어떤 대상이 충분히 이루어짐을 의미하는 것(熟成)에서부터 과거를 깊이 반성한다는 의미(熟省), 나이에 비해 신체 또는 지각 능력이 빠른 경우(夙成) 등에 널리 활용된다.

 우리 인터넷 환경은 영상, 사진 그리고 토론방 게시글, 댓글에 이르는 문자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사용자제작콘텐츠(UCC)가 주요 쟁점을 이끌어 가는 소재가 되었다. 이 쟁점의 소재들은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고 결국 주요 사회 의제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의 여론이 곧 실제의 여론을 반영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증대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숙성(夙成)한 네티즌들의 덜 숙성(熟成)된 글쓰기, 즉 의견 표명이라는 현상에 직면해 있다. ‘숙성(夙成)한 네티즌’이란, 자신이 갖고 있는 경험이나 생각의 깊이에 비해 글쓰기와 표현 활동이 빠름을 비유한 것이다.

 인터넷의 장점은 다양한 의견 교환을 통한 공론의 장으로서 기능에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해진 틀 속에서 일방적인 의견 개진으로 형성된 여론으로 오히려 그 부작용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만약 주요 대기업들과 관련한 사건 사고 기사에 누군가 ‘해당 대기업의 논리를 지지하거나 관용을 베풀어야 할 것 같다’는 댓글을 올렸다면 후속 논의는 동일한 패턴을 보이게 된다. 그 후속 댓글은 해당 기업에서 동원한 아르바이트라느니, 관련 직원의 과도한 충성이라는 식의 의견이 이어지기 일쑤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인터넷 공간 속에서 오고 가는 의견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는 이러한 현상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전자의 경우라면 인터넷에서 조직의 이해 관계에 따라 여론 조작을 시도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라면 유사한 쟁점에 대해 때로는 다른 사람과 다른 시각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토론 분위기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두 경우 모두가 혼재돼 있는 것이 냉정한 우리 인터넷 여론의 현실이다.

 댓글뿐만 아니라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들도 그 숙성 정도를 되짚어 보자면 글쓰기의 능력이나 순발력에 비해 깊이에서 오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 업데이트 주기에 스스로를 옭아매고 결국 블로그 대부분이 신변잡기의 콘텐츠로 채워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콘텐츠의 경중을 가리기보다는 ‘자유’라는 개념이 선행된 콘텐츠 생산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결국 네티즌들은 심도 있는 콘텐츠 생산자라기보다는 콘텐츠 가공자에 가까운 능수능란한 표현가로서 숙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해 관계가 없는 개인 네티즌들의 이러한 성향을 비판할 수만은 없다. 문제는 쟁점 또는 조직의 이해관계가 생성된 상황 속에서 이렇듯 기능적으로 숙성해 버린 네티즌들에 의한 여론몰이의 부작용이다. 기업을 비롯한 주요 조직들은 그 어느 때보다 이렇게 숙성한 네티즌들의 기능적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선거철, 주요 기업들의 쟁점 발생 시점 등 상시적으로 우리는 유사한 경험을 하면서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조차 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인터넷에서 현재 무엇이 논쟁거리다. 네티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현상 바라보기 정도에 국한해 그것을 여론이라는 것으로 평가해 버리곤 한다. 그리고 그 여론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려는 시도가 마치 여론관리 전략으로 둔갑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상에서의 올바른 여론 형성은 우리의 현실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것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숙성된 글쓰기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여론 형성이다. 이해 관계자들의 논리에 의해 숙성한 네티즌들이 이용되지 않도록 네티즌 스스로도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고 깊이 자성해 스스로를 숙성(熟省)시키는 활동도 필요한 때다.

 정치단체, 기업 등 이해관계 집단들은 인터넷의 단기적 여론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을 조직의 논리를 전달하는 메신저로 바라보기보다는 진정한 설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이종혁 프레인 사장 jonghyuk@pra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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