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는 기념일이 지나치리만큼 많다. 아무리 가정의 달이라지만 너무 심하다 생각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이제는 부부의 날까지 생겼다. 쉴 새 없이 다가오는 기념일이 건널목을 무시하고 달려드는 자동차처럼 무섭기까지 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동양의 미덕은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중용(中庸)에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마찬가지다. 매사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평형상태를 유지하는 게 바로 도(道)다. 이분법 구조의 서양 사상조차도 중용의 도를 수용하고 있다. 복잡계 이론이다. 세상은 복잡한 요소가 다양하게 얽힌 채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도 나름대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오히려 우리가 과유불급을 망각한 듯하다. 지나치게 이분법적이 돼 버렸다. 개발독재 시대의 잔재라고들 한다.
유난스레 5월에 기술유출 사건이 잦았다. 기념일 수만큼이나 대형 사건이 줄줄이 터졌다. 기아차의 기술유출 피해액은 22조원, 포스코의 와이브로는 15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발표대로라면 나라를 위태롭게 할 산업스파이 사건이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 아닌 경국지기(傾國之技)다. 국가의 명운이 기술안보에 달려 있는 세상이다.
좋은 일도 지나치면 싫증이 난다. 짜증스럽다. 그게 사람이다. 하물며 우울하기 그지없는 사건이야 오죽하겠는가. 우리도 기술유출을 걱정해야 하는 선진국이 됐다고 자위해 본다. 허사다. 우리 수준이 이만큼밖에 안되나 하는 자괴감만 커진다. 마음이 거칠어진다. 과격해진다. 테러리스트니 매국노니 하는 막말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그나마 기술유출에 대한 경각심만큼은 확실히 높아졌으리라는 기대가 위안이다.
반작용일까, 정부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정말 발표대로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스파이니, 매국노니 하며 우리가 매도하는 사람들도 아직은 혐의자일 뿐이다. 혐의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기술유출은 범죄임을 재단해내기 쉽지 않다. 영업비밀이라는 것은 공개된 특허와 달리 무형의 비공개 자산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떠올린다. 왜 기술유출이 이토록 잦은지를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기술유출 혐의자들에게 서슬퍼런 칼날을 들이댔지만 그들의 말이나 항변에는 귀조차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직원들의 기술유출을 죄악시하는 기업들도 정작 자신들이 기술을 이전할 때 허가를 받으라는 정부의 규제에는 반발하지 않는가.
혹자는 직원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샌드위치 신세인 기업들이 제 식구를 먹여살리기조차 힘들어진 탓이리라. 또 다른 혹자는 ‘공돌이’라는 자조섞인 말이 횡행할 정도로 이공계를 홀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공계 기피를 국정 과제로 삼은 게 이 정부인데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기업의 영업비밀이란 게 직원이나 연구원들과 떼어내기 힘들다. 마치 한몸과 같은 존재다. 기술은 사람과 함께 빠져나간다. 기술을 유출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욕심이 과하면 이들의 인권이 경시될 우려가 높다. 기술유출을 빌미로 현대판 노예처럼 옭아맬 수는 없다. 이들의 인권과 생존권은 보장돼야 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은 미국에 있는 한국인 박사 10명 중 7명이 귀국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고급 두뇌 절반 이상이 해외로 빠져나가려 한다고 한다. 지식강국을 외쳐온 우리의 비침한 현주소다.
되돌아보건대 5월 한달간 우리는 지나치거나 모자랐을 뿐이었다. 규제나 압박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나치면 풍선효과 같은 부작용만 낳는다. 기술을 보유한 직원과 연구원들이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을 수 있어야 한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용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유성호 디지털산업팀장 sh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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