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후지쯔의 개혁

후지쯔는 일본의 대표적 IT기업이다. 시스템통합·반도체·휴대폰·서버·PC·통신기기 등 웬만한 IT분야에는 다리를 걸치고 있을 정도로 IT업계에서는 팔방미인이다. 지금은 매각했지만 한때는 PDP·LCD 등 디스플레이 사업에도 각별히 공을 들였다. 올해 전체 매출이 5조엔을 웃돌 전망이며 15만85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이런 후지쯔가 지난 2003년 일본 정부와 대형 은행들이 출자한 부실기업 구조조정기구인 ‘산업재생기구’의 적용 대상 1호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고 하면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실제로 2003년 일본 경제계에서는 이런 소문이 돌았고 일부 언론에서 보도도 했다.

 2003년 전후의 후지쯔 사정은 절박했다. IT 거품 붕괴와 장기불황이 원인이 됐던 것 같다. 2002년 3월 결산에서 후지쯔는 3825억엔에 이르는 미증유의 적자를 기록했고 다음해도 1220억엔의 적자를 냈다. IT거품 붕괴와 장기 불황이 일본 IT업계 자존심인 후지쯔를 나락으로 밀어넣은 것이다. NEC 등 다른 IT기업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후지쯔 내부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 회사가 추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고 한다.

 역전의 발판은 2003년 6월 구로카와 히로아키 사장이 취임하면서 마련됐다. 취임 후 추진한 ‘구로카와 개혁’이 진가를 발하면서 부활의 신호탄이 쏘아진 것이다. 구로카와 사장은 먼저 비핵심 사업에 손을 댔다. 플래시메모리 사업을 미 AMD와의 합작법인에 넘겼고 PDP와 LCD사업은 히타치와 샤프에 각각 매각했다. 시스템구축 분야에서도 개혁의 물결이 밀어닥쳤다. 채산성이 낮거나 적자가 예상되는 시스템 구축 사업을 수주단계부터 배제하는 경영환경을 구축했다. 영업맨과 시스템엔지니어를 통합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프로젝트의 채산성을 점검하는 ‘SI어슈어런스본부’를 신설, 프로젝트의 채산성을 면밀히 검토했다. 시스템 매출에 큰 기여를 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집중적으로 채산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댔다. 사장이 직접 간부사원을 대상으로 실패사례 강습회를 여는 등 노력도 기울였다. 드디어 2005년 400억엔에 달했던 부실 프로젝트 규모가 1년 만에 100억엔 규모로 축소됐다. 시스템 부문의 경영 지표가 개선된 것은 당연하다.

 제조부문에서는 도요타 생산방식을 도입했다. 상당수 일본 기업이 중국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거나 대만 등 전자제품 위탁제조서비스(EMS) 업체에 생산을 의뢰한 것과 달리 후지쯔는 도요타 생산방식을 도입해 주문에서 생산까지의 시간을 단축하고 불량률을 줄이는 등 생산현장의 혁신을 꾀했다. 생산공장의 해외 이전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했다.

 해외사업 부문도 구각(舊殼)을 벗었다. 후지쯔는 90년대 영국의 ICL과 미국의 암달 등 중대형 컴퓨터 업체를 인수해 해외 사업의 활성화를 꾀했으나 다운사이징 등 새로운 IT 조류에 대처하지 못해 뒤처지고 말았다. 구로카와 사장은 ‘글로벌이 살길’이라고 외치며 해외사업을 독려했다. 내수 시장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해외 사업 확대에 나섰다. 독일의 ERP업체인 TDS 등 7개의 해외 IT업체를 인수한 것도 이 같은 전략의 일환이다. 구로카와 개혁이 진가를 발휘하면서 후지쯔는 지금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있다. 

 최근 삼성·LG 등 우리 기업이 경기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새로운 성장 동력 찾기에 나서고 있지만 녹록지 않다. 후지쯔의 개혁 사례가 정답은 아니겠지만 2003년 전후의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만들어갔는지 참고할 만한 가치는 있다고 본다.

◆장길수 논설위원 ksjang@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