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가 큰일 났다. 고용유발이 낮다거나 성장동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아니다. 환경 악화에 따른 IT인들 사기가 말이 아니다. “갈수록 사는 게 팍팍하다”고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일반 직원은 일반 직원대로, 임원은 임원대로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이다. IT인들은 요즘 공공연히 “내 자식은 절대 IT를 안 시킨다”거나 “지긋지긋한 IT”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이구동성으로 3D 중에 3D로 전락했다고 한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주역인 IT가 왜 이렇게 됐을까. 우선은 공급이 넘치기 때문이다. 수요가 없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간의 얼굴을 한 IT’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눈부신 기술 발전도 IT인 삶을 팍팍하게 하고 있다. 특히 하드웨어 분야가 신기술 직격탄을 맞았다. 수년 전만 해도 10만원 하던 제품이 이제 신기술 발전으로 1만원이면 살 수 있는 상황이다. 물건을 파는 벤더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 9만원을 날린 셈이다. 인원 감소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날로 등장하는 새로운 용어도 IT인들을 ‘평생 학습’으로 내몰며 여유를 허용치 않고 있다. 얼마 전 만난 40대 후반의 한 IT업체 임원은 “시류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비즈니스위크, 하버드비즈니스리뷰 같은 영문 잡지를 정기적으로 구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부족”이라면서 “이제 똑똑한 30대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가 된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주변에선 50년생 IT인을 찾아보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대신 보험 등 다른 업종으로 이직했거나 아예 자영업에 뛰어들었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듣는다.
IT코리아의 허리인 개발자들 삶은 팍팍한 IT인의 전형이다. 야근이 다반사인 이들은 자기계발 시간을 낼 수 없다. 툭하면 발생하는 과업변경 때문에 정시 출퇴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소연이다. 야근에 대한 초과수당을 받는 것도 아니다. 오늘도 ‘고객 만족’을 위해 육신과 정신을 혹사당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 인력업체 사장은 자신들의 처지가 개만도 못하다면서 “개는 무얼 물어오면 주인이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하지만 우리는 밤새워 일해도 칭찬은커녕 더 물어오라고 오히려 시달린다”고 한탄했을까. 이런 상황이니 혹자의 지적처럼 개발자들의 열악한 삶은 어쩌면 인권문제고 인간 존엄성 문제다.
척박한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그들에게 자기계발 운운은 어쩌면 사치스럽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것이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21세기는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시대다. 또 관리가 아닌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대며, 이 리더십은 고위경영자만이 아니라 개발자도 갖춰야 할 덕목이다. 어떻게 하든 시간을 내 책을 읽고 음악 감상을 하는 자기계발에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임원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IT업체 임원의 취미는 골프다. 푸른 초원을 보며 평일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제 임원들도 취미란에 독서·음악·미술감상 같은 것들을 적어야 한다. 그래야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IT인들 머리에는 IT밖에 들어 있지 않다”거나 “도대체 IT인은 감동할 줄 모른다”는 민망한 말을 더는 듣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정부가 척박한 IT 환경 개선에 당연히 나서야 하겠지만 - 개발자들의 평균 근무 시간 같은 기초데이터도 없는 정부를 믿지는 말자 - 그보다는 각자 스스로의 계발 노력이 우선이다.
이런 노력이 있을 때 IT인들의 감성지수는 높아질 것이고, 이는 IT강국 코리아 업그레이드와도 닿아 있다. 지금은 콘텐츠와 창의성이 지배하는 소프트 시대기 때문이다. 제품과 지식을 파는 건 이류나 삼류다. 감성을 팔아야 일류다. 감성이 풍부한 IT인이 늘어나는 건 큰일 난 IT를 건지는 일이기도 하다.
◆방은주 논설위원 ejb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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