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시장을 넘어서 세계 시장의 흐름을 분석하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국산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이례적으로 9주째 극장에서 상영 중인 ‘천년여우 여우비’의 제작자 강한영 선우엔터테인먼트 회장(59)은 ‘좋은 작품론’을 강조했다.
천년여우 여우비는 어느새 애니메이션계의 대선배 반열에 선 강한영 회장이 1980, 81년에 제작한 ‘별나라 삼총사’ ‘타임머신 001’ 등 4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이후 26년 만에 제작에 참여한 작품.
원더풀 데이즈의 엔딩 크레디트에 책임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제작에 관여하기는 그 때 이후 처음이다. 그가 보는 한국애니메이션에 대해 들어보자. “26년 전과 비교했을 때 영상을 제작하는 기술이나 투자 비용 등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이 진일보했지만 관객은 크게 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화 외에도 즐길 수 있는 매체가 많아진 현실에서 적당히 만들어서는 관객이 호응하지 않기 때문이죠.”
물론 강 회장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대외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을 실감한다고 말한다. 10년 전만 해도 밉TV나 밉콤 등의 행사에 가면 작품을 들고 여기저기 팔러 다녀야 했지만 지금은 한국 공동관에 유럽·미국 등지에서 먼저 관심을 갖고 찾아 올 만큼 됐단다.
“전체적으로 어려운 시기임에는 분명하지만 시장을 우리 스스로 개발하면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작품 기획을 하면 해외에서 먼저 같이 만들자는 제의를 해 오는 것을 보면 희망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 애니메이션이 질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투자가 부족한 데 대해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해외에서 관심을 가질 때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수출해야 하는데 대기업이나 정부에서 만든 펀드가 실제로는 업계까지 유입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 그래서인지 강 회장은 “애니메이션 산업의 특성상 자금회수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오히려 대기업 등 자본력을 갖춘 곳에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큰 시장을 겨냥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할당된 의무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보지도 않는 시간에 방영하고 있는 게 문제”라며 한국의 방송환경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선우엔터테인먼트는 현재 ‘믹스 마스터’의 후속작으로 TV 시리즈 ‘트렉스터’를 제작 중이다. 이미 몇 군데 해외 기업에서 투자유치를 문의해 오지만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또 미국의 한 방송사가 선우에서 기획한 캐릭터와 아이디어를 채택해 작품을 만들겠다는 제안을 받고 이르면 다음달에 계약할 예정이다. 강 회장은 “이 계약의 성사는 미국이 우리의 창의력을 인정해 구매하는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원로격인 강한영 회장. 하지만 그는 해외 유수 애니메이션 페스티벌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개최하는 작은 규모의 페스티벌까지 찾아가 출품작을 일일이 감상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그런 곳에 출품된 작품들은 굉장히 실험적이에요. 보석을 찾아내듯이 젊은 창작자들의 작품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면서 즐거운 일이죠.”
이수운기자@전자신문, p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