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는 선진국이나 후진국 할 것 없이 국가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인프라다. 또 산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국가 존재 당위성을 증명할 수 있고,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영위토록 함으로써 안정적인 사회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 문턱에서 의료산업의 경제적인 잠재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의료산업 분야에서도 시장 경제나 경쟁의 원리가 살아 움직이는 산업의 기본 틀을 유지하게 하면서도 보건 의료만이 갖고 있는 복지적 성격을 조화시키는 것이 모두가 고민해야 될 도전 과제다.
미국은 국민총생산량의 14%가 의료비로 쓰이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공감하는 완벽한 의료 보장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노령화가 이어지고 그에 따라 의료 수요 구조가 전염성 질환에 관심을 쏟아야 했던 과거와는 판이해지고 있다. 우리도 앞으로 국민총생산량의 10% 이상이 의료비로 지출될 날이 올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의료 시스템이나 의료 산업의 바람직한 모습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거와 달리 의료 시스템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그 변화를 이끌어내는 요인은 무엇일까. 의료 산업도 다른 산업과 같이 네트워크 사회가 가져오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놓여 있다. 그러나 다른 산업이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네트워크에 의해 빠르게 변하고 있는 데 비해 의료계는 아직도 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 병원이 경영정보나 원무처리 정도는 전산화했지만, 진정 네트워크나 정보화의 이점이 환자에게 제공될 정도로 빨리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다. 즉 아직도 많은 병원에서 환자가 불필요하게 시간을 뺏기고 치료 정보나 진단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정보 소통에 답답해하기 일쑤다.
이런 정보화의 미비는 진료의 안전성이나 정확성을 훼손하고 결과적으로는 소비자인 환자에게는 불필요한 진료 과오나 불만족스런 서비스로 나타나게 된다. 또 관치 의료정책이 가져오는 비능률, 비정상적인 경제 원칙이 판치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의료 산업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고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도 상실된다.
그나마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변화의 목소리가 일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소비자나 의료계가 소외되고, 각 부처가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졸속적인 경쟁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의료 서비스 산업 추세를 보면 소비자가 정보를 확보하게 되면서 대등한 관계에서 언제 어디서나 의료 서비스를 요구하고 받기를 원한다. 병원경영자도 디지털 정보화에 기반을 둔 전자병원 체계를 만들어 환자에게 쉽게 다가가고, 미래형 의료 시스템인 유비쿼터스서비스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는 정보화와 소비자 권리 확보 외에도 고난도의 각종 첨단 기술에 기반을 둔 의료 서비스 내용이 복잡해져서 전문가 외에는 다룰 수 없는 고도화된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바이오 기술에 기반을 둔 바이오 신약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의 경험의료체계를 완전히 탈피해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분자의학의 시대로 들어서게 됐다. 이런 첨단 의학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경비를 대야 하는 소비자나 정책을 입안하는 관료, 정치인 모두 같이 머리를 맞대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의료발전과 함께 수반되는 의료비 상승을 감당하기 힘들고 첨단 의료 혜택으로부터 소비자의 접근 권한을 제한시킬 수 있다. 즉 첨단 기술로 무장되고 고도로 정보화된 사회에서는 단순히 의료를 개선시키는 차원이 아니라 의료 서비스의 내용·성격·제공 방법 등이 재검토돼야 한다. 소비자의 높아진 서비스 욕구와 산업계의 발전을 위한 포석, 또 의료 현장에서 뛰는 의료계의 목소리가 같이 담겨야 함은 물론이다. 즉 기술발전과 정보화로 인해 환자나 소비자 중심으로 의료의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제호 성균관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분자치료연구센터장 jeholee@unite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