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곽수일 서울대 명예교수(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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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AMP) 개설

 서울대학교가 종합화 계획에 의해 현재의 관악산 캠퍼스로 이사한 것이 1975년. 종암동의 옛 상대 건물도 정이 들었지만 워낙 빌딩이 낡아 관악산 새 캠퍼스는 대학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는 것 같았다.

 캠퍼스 이전과 함께 학제개편이 이뤄지면서 경영대학은 또다른 변화의 계기를 맞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20명도 되지 않는 교수진으로 출발했지만, 경영학 교수들로서는 경영학 발전의 전기를 만들었다고 자부하며 새로운 각오로 출범했다고 기억한다.

 이렇게 경영대학이 새롭게 출발하면서 첫 번째 프로젝트는 경영대학에 최고경영자과정(AMP)을 시작한 것이다. 1975년에서 76년까지 1년에 걸쳐 프로그램을 만들고 강의 주제와 방법을 연구한 끝에 76년 봄학기에 AMP 1기가 시작됐다. AMP는 그 후 30년간 우리나라에서 최고경영자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타 대학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거의 경영자 교육의 효시 겸 표준으로 자리를 잡았다.

 AMP 1기만 해도 경쟁률이 최소 3대 1에 이를 정도로 응모자가 몰렸다. 자신감이 생겼다. 경영대 교수 전체가 새로운 교육내용과 방법을 동원해 AMP 성공에 노력했다. 그 흔하던 ‘휴강’은 AMP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지난 30년간도 AMP 과정에서 휴강이 있었다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으니 지금도 이 원칙은 지켜지는 것 같다. 또 강의 시간도 늦게 들어가서 일찍 나오는 것이 아니고 정시에 강의를 시작하여 끝나는 시간을 지나야 나오는 식으로 철저하게 시간을 지켰다.

 AMP 수강생에게도 결석은 최대의 금기 사항으로 인식되게끔 유도했다. 기업 임원으로서 누구보다 바쁜 일정과 약속이 있겠지만, 6개월간 결석이 5회를 넘는 경우 1차 경고를, 8회가 되면 AMP에서 제적했다.

 서울대 AMP 과정이 성공하자 다른 대학에서 우리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나 대부분 어려움을 경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고경영자 교육이 목표였지만, 수강생간 친교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실패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는 AMP 교육과정을 개발하며 비즈니스 게임(Business Game)을 개발할 것을 요청받고, 몇 달에 걸쳐 노력한 끝에 전략 게임을 개발했다. 미국 경영대학원에서 사용되는 비즈니스 게임을 참고로 하여 우리 기업의 실상과 환경에 적합하게 만든 것으로 이후 약 20년간 AMP에서 쓰여졌다. 초기에는 수작업으로 게임 판정을 내리고 진행했으나 PC 보급과 함께 훨씬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교육내용과 방법으로 발전했다. 이 비지니스 게임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비즈니스 게임이었고, 훗날 모 그룹 연수원에서도 이것을 도입해 사내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특히 AMP를 통해 만난 많은 기업인과 최고경영자들은 더할나위 없는 자산이 됐다. 이들 최고경영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우리 기업의 문제와 실상을 파악할 수 있었을 뿐더러, 경영학 이론과 기업 현실을 접목시킬 수도 있었다. 최고경영자들과 현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기업 성장에 일조할 때 느끼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루는 모 그룹 회장이 만나자는 요청이 있어서 면담을 한 적이 있다. 학교를 휴직하고 그룹사 중 한 곳의 사장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뜻밖의 이야기라 며칠을 고민하고 정중하게 거절의 뜻을 표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현명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 당시 전직을 했더라면 교수로서 영광스러운 은퇴를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skw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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