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日流, 재료탓 아니길

Photo Image

솜씨 좋은 요리사들은 말한다. “좋은 요리의 핵심은 좋은 재료를 쓰는 겁니다.”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영화를 꼽으라면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미녀는 괴로워’일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곧 개봉할 ‘묵공’까지 최근 들어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계에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아우르는 일본 만화는 참신한 요리 재료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스크린과 안방 극장에 ‘일류(日流)가 분다’며 우리 문화 근간을 위협한다는 새삼스러운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영화와 드라마가 소재를 얻는 곳이 일본 만화 원작만은 아니다. ‘궁’ ‘타짜’ 등 우리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 작년 한 해만도 꽤 제작됐다. 올해는 천계영의 ‘오디션’과 강풀의 ‘바보’도 각각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 중이어서 곧 선을 보인다.

 이른바 ‘일류(日流)’라는 현상이 참신한 소재를 찾으려는 수많은 노력 중 최근 두드러지는 바람(風)일 뿐이지 문화의 근간을 흔들 만큼 강한 태풍은 아니라는 방증이 된다.

 일류(日流)를 운운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국내에는 괜찮은 원작이 없다는 하소연이다. 하지만 이것은 ‘괜찮은 원작이 없다는 편견’이 ‘괜찮은 원작을 찾으려는 의지의 박약함’을 넘어서는 데서 나오는 변명이 아닐까.

 일례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중인 형민우의 ‘프리스트’와 대만에서 드라마로 제작 중인 하성현의 ‘퀸즈’ 등은 이미 해외에서 괜찮은 한국 만화 원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프랑스에 진출한 ‘천추’와 ‘호텔 아프리카’의 인기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 만화는 과거 한계로 지적돼온 빈약한 내러티브 등을 극복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만화는 영화와 드라마라는 요리의 재료로서 일본 만화 못지않게 괜찮은 품질을 갖춰 나가는 중이다. 좋은 요리의 핵심이 좋은 소재이긴 하지만 형편없는 요리사가 조리한다면 그 요리는 그저 음식물통에 분리수거될 뿐이다. 일본 만화에서 원작을 찾는 시도가 ‘솜씨 없는 요리사의 재료 탓’이기보다는 더 나은 재료를 찾는 노력이길 기대한다. 그래야 이 시각에도 고품질 재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국내 작가들이 덜 허탈해질 것이다. 이수운기자·콘텐츠팀@전자신문, pero@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