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매각을 추진해왔던 대우일렉이 우선협상대상 기업의 가격인하 요구로 인해 매각작업이 늦춰지는 모양이다. 그러지 않아도 대우일렉의 해외 매각을 둘러싸고 헐값 매각에 기술 유출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우선협상대상 기업으로 선정된 인도의 비디오콘이 다시 가격을 인하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소식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비디오콘이 제시한 대로 10% 이상 다시 가격을 인하한다면, 매각 가격은 현재 대우일렉이 보유한 자산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된다. 최종결론이야 어차피 올해를 넘겨야 나오겠지만 이 정도 금액이면 구태여 매각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대우일렉은 비록 워크아웃 상태지만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출원된 기술 특허만 1만개가 넘고, 매출 또한 2조원을 넘어서는 대형기업이다. 지난 30여년 동안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성가를 올렸던 대우의 브랜드 가치는 아직 유럽이나 동남아 지역에서는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때지만 세계 경영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면서 대우일렉의 가장 큰 자산으로 평가받았던 수출인력은 아직도 대부분이 회생을 기다리며 회사에 남아 있다. 이처럼 디지털시대에 오히려 더 큰 자산으로 주목되는 무형의 지적자산에 대한 가치는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주변 상황이 악화됐으니 매각 대금을 낮춰줘야 한다는 비디오콘의 주장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대우일렉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직도 우리나라 기업이 가치와 상관없이 헐값으로 해외에 매각되고 있다는 사실은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올라선 우리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IMF 당시 우리나라는 외화부족으로 인해 팔 수 있는 기업은 하나라도 더 팔아 외화를 확보해야 했다. 다급하다 보니 좋은 기업을 시가에 비해 훨씬 낮은 가격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벌써 10년 가까이 흘렀다. 그런데도 ‘한국기업의 해외 매각은 헐값 매각’이라는 등식이 고정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 사회도 이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하다.
사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부실기업을 맞게 된 채권단 처지에서는 한푼이라도 더 건지는 게 과제다. 하지만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국가경쟁력이나 다른 국내 기업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면서도 헐값에 해외 매각을 추진한다면 보통 큰일이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됐지만 비오이하이디스 등 디스플레이 전문기업이 헐값으로 중국이나 대만기업에 넘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중국이나 대만에 비해 서너 걸음 앞서 있던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이제는 이들 기업에 밀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는 현실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대우일렉의 헐값 매각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대우일렉의 헐값 매각 논란은 앞서 지적한 대로 해외 매각에 대한 사회적인 무관심과 여기에 채권을 조기에 회수하려는 채권단의 무리수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원래 장사는 파는 쪽에서는 비싸게 팔려 하고, 사는 쪽에서는 싸게 사려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당장 파는 데에만 급급하다. 어느 누가 다급히 팔려는 사람에게 제값을 쳐주겠는가.
따라서 우선협상대상자가 가격인하를 요구하고 있다면 이를 계기로 채권단에서는 이제라도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 아니면 매각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지만 동등한 수준에서 재협상이 가능해질 것이다. 대우일렉의 해외매각이 이미 고질병이 돼버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치유하는 모범 처방전이 되도록 지금부터라도 채권단이나 대우일렉 임직원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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