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한반도에는 가장 고도가 높고 긴 주 산맥 1개와, 여기서 나뭇가지처럼 연결된 2차 산맥 20개, 3차 산맥 24개, 독립 산맥 3개로 형성돼 있다고 한다. 이런 산맥들은 우리 민족의 정기를 이어가고 혼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산맥 지도를 보면서 문득 우리나라의 경제 지도는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대한민국 비젼 2030’의 중심에 ‘중소기업’이 자리하고 있다. 철저히 인적자원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일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기술혁신과 경영 혁신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중소기업 육성은 건실한 경제 구조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부 주도하에 혁신형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업력 3년 이상인 기업중에 기술력과 성장성을 인정받은 기업들을 ‘이노비즈’ 기업으로 인증해 지원하고 있다. 현재 5600개 이노비즈 인증기업이 있고, 앞으로 정부 육성 의지에 힘입어 더욱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 주도하에 혁신형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일은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노비즈 인증을 받은 기업들이 한 분야의 기술 우위나 신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협소한 국내 시장, 협상 파워의 불균형 및 해외 시장 개척에 필요한 자금과 인력 부족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즉 아직 낮은 산봉우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가뭄에도 산이 깊으면 계곡의 물이 마르지 않는데, 낮은 산봉우리에 머물고 있는 대다수의 이노비즈 기업들은 잠시만 가뭄이 들어도 물줄기가 말라 생명이 위태롭기 까지 하다. 따라서 각각의 이노비즈 기업들이 지속 성장 발전하여 중견기업으로 도약하는 확률은 아주 낮을 수 밖에 없다. 필자 역시 개방형통신부가서비스 플랫폼을 국내 주요 통신사업자에 공급하는 등 시장 점유율 1위로 독점적 시장 지위를 확보했지만 지속 성장의 현실적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은 비단 나뿐 아니라, 동종 업계 기술 기반 혁신형중소기업들의 공통된 문제다.
이런 한계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두 세 개의 기술기반 통신·IT 소프트웨어 업계 CEO 들이 회사를 하나로 뭉쳐보자는 의견이 도출된 적이 있었다. 우수 연구개발 인력을 보다 많이 확보함과 동시에 최소 500억 이상의 연 매출을 달성할 수 있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현실로 이어지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대부분 벤처캐피털투자기관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어서 개별 기업 가치 평가에 대한 이해 관계는 물론, 빨리 빠지려는 요구도 장애 요인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기관투자자의 이해관계를 해결할 만한 금융 시스템이 개입 될 수 있다면 외국 유수의 회사와 당당히 경쟁할 만한 통신·IT 소프트웨어 산맥이 탄생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혁신형 중소기업의 지속적인 배출은 씨앗을 뿌리는 의미로 매우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이제는 혁신형중소기업의 개별 산봉우리를 연이어 어떻게 큰 산맥을 형성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비즈니스 섹터별로 1위의 혁신형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동종 산업군을 묶어 1차, 2차, 3차 산맥으로 키워 나가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낮은 봉우리로 머물고 있는 개별 혁신형기업군은 약간의 가뭄만 닥쳐도 메말라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축적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기술 기반 회사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면 그 기술의 싹을 다시 틔우는데 얼마만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생각해 볼 일이다.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거듭 발전하려면 적어도 우리나라 경제 지도를 바꿔놓아야 하지 않을까?
이노비즈 산맥을 10개라도 형성할 수 있다면 혁신형중소기업군을 중심으로 올바른 시장 구조개편이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노비즈 산맥을 형성하기까지는 혁신형중소기업 CEO들의 이기심과 금융 시스템의 한계, 기업 합병 과정의 기업 가치 평가 등 복잡한 이슈들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기술기반 중소벤처기업이 창업해 이노비즈기업이 되고 이들이 또 결합하여 중견 기업으로 성장할 때 비로소 ‘2030 대한민국 비젼’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앞으로 이노비즈 산맥을 형성하기 위한 금융 시스템과 정책적인 실행이 절실히 필요하며, 이노비즈 산맥이 국가 경제의 굳건한 뿌리를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미숙 헤리트 사장 mshan@heri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