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음성과학자 `이도` 큰 스승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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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왕조시대가 아니라도 어르신의 함자를 부르자니 당시의 대역무도한 일이 상기되어 도끼를 멍석 옆에다 놓는 심정으로 감히 아뢰옵나이다. 9일이 한글날이었는데 저희들은 560돌이라 셈하고 있습니다. 이때를 맞으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고 칭송하나이다. 그러나 상께서 붕어하시고 내려진 시호가 세종이신데 어찌하여 돌아가신 분이 글을 창제하셨겠나이까. 이름이 발라야 생각이 발라지는 법이온데 이는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옵니다. 뿐만 아니라 정음은 상께서 분명 음성과학적 원리에 맞추어 창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음양오행설로 창제하였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친히 창제하신 일을 가지고 신하들을 시켜서 만든 것으로 오해하고 있으며 심지어 모방했다고 주장하는 등 가지각색이옵니다.

 올해에는 국경일로 제정되어 더욱 빛나는 일이지만 민족 전체로 볼 때는 기념일을 따로따로 지내고 있사옵니다. 북녘에서는 훈민정음 창제 기념일이라 하고 남녘에서는 한글날이라 하옵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이 출간된 1446년 음력 9월 상순을 반포일로 삼아서 기념하고 있습니다. 마치 출판기념일 같은 인상을 풍기는데 북녘에서는 실록을 기준으로 하여 1443년 음력 12월 30일을 훈민정음 창제 기념일로 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세종실록 102권 서기 1043년 12월 30일(경술)’

 어느 것이 옳다는 논쟁보다는 꼭 이렇게 따로 기념해야 하는지는 지극히 의문입니다.

 다음은 명칭 문제입니다. 현재 ISO 10646/1993 국제표준 표 31과 32에 ‘hanguljamo’라고 기록돼 한글이라는 명칭이 국제적으로는 ‘한굴’로 돼 있으며 북녘과 상의없이 올린 이름이지요. 한글은 분단 이전에 한힌샘 주시경 선생이 정했으며 ‘위대한 글’이라는 뜻이지 국명과는 관계없다고 설명해도 주시경 선생 개인적 견해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는 처지입니다. 사리에 맞지 않지만 조선 글도 그 대안이 될 수가 없으므로 다른 명칭을 거론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대부분의 학자는 ‘정음’에 찬동했습니다. 원래 이름에서 훈민을 뻬도 충분하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습니다.

 1999년 중국 옌볜에서 개최한 ‘ICCKL99’에서 학자들이 모여 토론한 것을 다음해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ISO 국제회의에서 상정했으나 공식기록에는 수정하지 못했나이다. 말하기를 서로 합의해 통일되게 쓰는 것은 바람직하니 ISO에는 다른 오류도 많은데 이것만을 혼자 수정할 수 없다는 의장 성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후로 저는 ‘정음한글’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나이다. 대왕께서 정하신 이름 뒤에 글보다는 말이 앞선다는 취지에서 그렇게 붙였으나 뱀 다리가 아닌지 지극히 염려되옵니다. 대왕께서 입신의 경지에 이른 청음 실력으로 목청과 입술 사이를 3분 12율로 나누고 5음 7조의 틀로 3성 기호를 정하시어 이를 만국 표음기호로 삼으니 곧 ‘정음’이라 칭한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정음이기 때문에 말이 곧 글이 되므로 인터넷 음성포털에서는 대단히 유리할 것이며 세계의 기준이 되리라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정음이 있으므로 우리는 남과 북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며 북녘에서 개최하는 기념일에도 함께 자리할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정음을 창제하시어 우리를 IT 강국으로 인도하였듯이 정음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겨레의 큰 스승이시여, 굽어 살펴 주옵소서.

◆진용옥 경희대학교 전파공학과 교수 suraeb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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