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마전(伏魔殿)은 원래 마귀가 숨어 있는 전각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근거지라는 의미다.
어원은 중국 북송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라에 전염병이 돌자 왕은 홍신이란 인물을 용호산에서 수도하고 있는 도인에게 보냈다. 하늘에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다. 도인이 외출한 사이 도착한 홍신은 우연히 ‘복마지전(伏魔之殿)’이란 전각을 보게 됐다. 전각은 노조천사(老祖天師)가 마왕을 물리치고 세운 것이었다.
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홍신은 호기심에 이끌려 문을 열게 됐다. 갑자기 굉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다가 흩어졌다.
때마침 돌아온 도인이 이걸 보고 “이곳은 마왕 108인을 가둬둔 곳인데 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머지않아 나라에 큰 소동이 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얼마 후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복마전은 이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음모의 근거지를 지칭하게 됐다. 부정부패, 비리, 권모술수의 온상지라는 의미다.
요즘 방송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흡사 복마전을 연상케 한다. 여야와 청와대가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KBS 신임사장 인선은 파행을 거듭중이다. 또 논문 중복 게재 의혹과 함께 낙하산 인사 논란을 빚고 있는 EBS 신임사장은 출근 저지 투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방송위원 인선은 특히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정파 간 나눠먹기 및 코드 인사의 결정판이란 말이 난무했다. 결국 위원장과 상임위원이 중도하차했다. 또다른 상임위원의 부동산 투기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루 아침에 정책도 뒤집혔다. 2기 위원회에서 만들어놓은 지상파DMB 정책이 3기 위원회에서 곧바로 뒤집혔다. 지상파방송사의 MMS는 슬그머니 눈감아주는 눈치다.
통·방융합기구도 마찬가지다. 여당이 전격적으로 TF를 꾸린 데 이어 시민단체들도 연합기구 형식으로 TF를 발족시켰다. 야당도 마침내 특위를 출범시켰다. 기세좋게 돛을 올린 여당 TF는 제대로 가동되지도 않고 야당 특위는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다. 시민단체도 다를 바 없다.
108인의 마왕이 활약하고 있는 복마전을 보는 듯하다. 정치와 권력의 속성이 개입된 탓이다. 통·방융합 논의가 방송에 이어 통신을 정치적 사정권으로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IT산업부·박승정차장@전자신문, sj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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