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카메라가 다시 사진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순간 동문서답인 줄 알았다. 스무고개로 착각할 뻔했다. 지난 20일, 카메라 시장의 동향을 듣고자 던진 질문이 박기형 한국후지필름 이사(50)의 입을 통해 추상적인 답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사진 찍는 도구가 사진을 떠났었다?’
얘기는 이어졌다. “처음 디지털카메라는 영상 입력기에 불과했죠. 얼마나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보다 디지털로 이미지를 저장하는 그 자체에 관심과 호기심이 몰렸습니다. 어쨌든 디지털카메라는 그 덕에 날개를 단 것처럼 폭발적으로 판매됐지만 이젠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에선 보급률이 50%를 넘어섰고 한국도 올해 정점을 맞을 것입니다. 그럼 소비자들이 디지털카메라에 기대하는 다음 가치가 무엇이겠습니까. 브랜드나 디자인, 부수적인 기능이 아닌 ‘사진’에 충실한 제품일 것입니다.”
박 이사의 주장은 누가 다뤄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눈으로 보는 그대로를 표현해내는 디지털카메라가 각광 받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원론적이지만 그동안 간과됐던 부분이다.
“화소를 높이는 건 사진의 질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는데도 화소 경쟁에 그동안 모든 디카 업체가 매진했습니다. 화소는 일정 수준만 넘으면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는데 마케팅 측면에서 워낙 경쟁이 심했습니다.”
그는 작년 4월 일찍 ‘사진’으로 돌아서자고 했다. 그중 하나로 어두운 곳에서도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고감도’를 전면에 내세웠다. 후발 주자로선 부담스러운 시도였지만 1년이 지난 현재 소니·캐논 등 선발 업체들도 고감도 경쟁을 벌일 정도로 시장 트렌드를 바꿔 놓았다. 한 발 앞서 움직인 덕에 지난해 업계 4위로 뛰어올랐고 ‘고감도=후지필름’이라는 메시지가 시장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카메라 원리를 모르는 일반인에게 감도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를 파는 사람들도 잘 몰랐습니다. 감도의 특성을 보여주는 비교 사진을 들고 1년 동안 뛰어다녔습니다. 유통에선 이해도가 높아진 것 같은데 아직 일반 소비자에겐 충분히 메시지가 전달됐다고 보지 않습니다.”
25년간 사진산업에 종사해온 전문가의 입장에서 다음 단계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어두운 곳에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찍으려면 카메라 감도가 6400이 돼야 합니다. 이제 막 감도 3200을 지원하는 제품이 나왔으니 6400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사진의 질이 점점 중요해지는만큼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지요. 후지필름에서도 가장 힘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입니다.”
윤건일기자@전자신문, ben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