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유해물질 사용제한에 관한 지침(RoHs)’은 전기·전자제품에 유독성 물질 사용을 규제한 법규로서, 폐기물의 매립·소각 등 처리와 재활용 과정에서 환경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물질의 사용을 제한하기 위한 지침이다. 이 지침이 발효되는 올 7월 1일부터 EU시장에서 판매되는 전기·전자 제품에는 납(Pb)·수은(Hg)·카드뮴(Cd)·6가크롬(Cr6+)·브롬계 비페닐 난연제(PBB)·브롬계 디페닐 난연제(PBDE)의 6개 물질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EU에서 RoHs가 발효되면 어느 국가보다 타격이 큰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이 지역에 전자제품 수출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고 제품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전략을 세우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점을 반영해 최근 EU에 전기·전자제품 수출이 많은 관련 업체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특히 정부 유관부서와 대기업의 대응책 마련이 어느 곳보다 활발하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실질적인 RoHs 발효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현실적으로 영세하기 때문에 이 분야의 연구개발 및 생산시설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다 최근 들어 전기·전자제품 가격 하락이 급속히 이루어지고 석유가 인상과 원화강세까지 겹쳐 상황이 여간 심각하지 않다.
형편이 이러한데도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은 대부분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에 RoHs에 대한 지침을 내리고 이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대기업이 기술개발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자금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부품을 공급하려면 중소기업 자체적으로 RoHs를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부품을 공급받는 대기업이 모든 사안을 해결하게끔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전기·전자분야의 EU 수출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반드시 추진해야 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 중소기업의 애로상황을 심도 있게 분석해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EU 수출 전자제품에 사용이 금지될 6개 물질 가운데 다른 어느 것보다 중요한 6가크롬을 살펴보자. 6가크롬은 전기·전자제품의 외관을 장식하는 도금용 물질이다. 각종 제품의 표면처리 기술이 고급화 추세를 보이면서 크롬 도금을 적용하는 외관부품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생산이 증가하고 있는 휴대폰을 비롯해 각종 전자제품에서 크롬 도금이 제품 고급화를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하지만 오는 7월 RoHs가 발효되면 현재 많이 사용되는 6가크롬은 사용할 수 없다. 이를 3가크롬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우선 3가크롬에 관련된 약품은 우리나라에서 생산할 수 없어 유럽과 미국 업체에서 전량 수입해야 한다. 게다가 3가크롬 생산설비와 약품대금이 비싸 영세한 도금업체가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현재 이 기술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은 전무한 실정이다.
삼성전자의 애니콜을 비롯해 우리나라 전기·전자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명품으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는만큼 앞으로 현안과제가 될 3가크롬 기술개발 문제는 해당 중소기업에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대기업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해 주기 바란다. 대기업이 그동안의 관행처럼 중소기업 독자적으로 이 문제를 풀기 바라거나 정부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 전기·전자제품의 EU 수출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서정호 케이앤디 대표 jhsir7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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