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평가원이 국내에 연구개발(R&D)센터를 두고 있는 외국인 기업 425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술개발투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그동안 유치된 해외 R&D센터는 대부분 기술과 인재보다 시장을 노리고 한국에 진출한 것으로 보인다. 조사대상의 40.4%가 전진기지 확보를 투자동기로 꼽은 것만 봐도 그렇다. 반면에 우리가 기대하는 기술공유나 공동개발 목적으로 투자한 곳은 16.4%에 불과하다.
또 조사 대상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R&D 비중을 의미하는 R&D 집약도가 평균 1.5%로 해외 모기업의 R&D 집약도 3.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의 R&D센터 연구원 전체 6975명 가운데 0.5%에 불과한 36명만이 외국인이라고 한다. 이러니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R&D센터들이 최신 기술과 지식을 이전하거나 한국의 혁신역량 강화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 시점에서 해외 R&D센터 유치 전략을 다시 한번 재점검해 봐야 한다고 본다.
현행 해외 R&D센터 유치사업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나온 한국의 ‘동북아 R&D허브정책’에 따른 것이다. 세계 일류의 해외 연구기관을 한국에 유치함으로써 창조형 국가혁신체계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해외 R&D센터 유치사업에 전 부처가 나서고 있고, 지원도 거의 전폭적이다. 올해부터는 국내에 100만달러 이상을 투자해 R&D센터를 세우는 외국기업에도 우리 정부가 현금지원까지 해준다.
각 부처가 실적경쟁을 벌이다 보니 작년에만 해도 15개 연구기관과 기업의 R&D센터를 유치하는 등 큰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인력이나 설비 등 연구체계가 제대로 갖춰진 곳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지 형식적으로 국내기업 또는 연구기관과 센터를 만들어 운영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선진 과학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추진한 해외 R&D센터 유치사업이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얘기다. 해외R&D센터 유치사업에 문제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인지 면밀히 따져보고 시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동안 양적 유치에 급급해온 것에서 벗어나 질적 유치 및 활용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R&D를 확대하고자 하는 기업과 물건 팔기에만 집중하는 기업에 차별을 두고 외국인투자를 유치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좀더 실효성 있는 유치활동을 추진하려면 관심을 보인 연구기관들의 유치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국내 기술파급 효과가 큰 해외R&D센터를 사전에 발굴해 맞춤형으로 유치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집중적 유치 대상으로 삼아야 할 R&D센터는 우리의 부족한 혁신역량을 보완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글로벌 핵심연구소들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해서 이들 핵심연구소가 한국에 온다는 보장은 없다. 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 시장규모에서 중국을 따라 갈 수가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유인 요인은 한국 기업의 수요와 우수한 인적자원 및 까다로운 소비자의 테스트베드 기능 등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한국에 R&D센터를 설립할 경우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도록 우수 연구인력과 인프라 지원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유치하더라도 제 기능을 다하기 어렵고 결국 첨단기술의 국내 파급 등 기대효과를 전혀 거둘 수 없게 된다.
이와 함께 국내 R&D센터의 세계화 전략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이미 중국과 인도 등 개도국 R&D센터들은 기술과 인재를 찾아 선진국뿐만 아니라 다른 개도국으로 진출하고 있다. 전 세계 기업이 글로벌 인재와 기술 확보를 목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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