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한경희생활과학 한경희 사장 (3)

Photo Image
현재의 스팀청소기 생산라인현장

(3) 눈물 머금은 폐기처분

유럽은 ‘관리의 나라’, 미국은 ‘경영의 나라’라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 10년 가까이 있는 동안 호텔·부동산·유통분야를 두루 거쳤다. 1994년 말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지만 후회나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로부터 6년 후, 나를 보는 주위 사람들의 눈빛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제품 개발이 늦어지면서 사업을 그만두라는 얘기도 쏟아졌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1년간 2억원에 가까운 손해를 보면서 사업 자금을 탕진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전극 방식으로 개발이 어렵자 히터 방식을 도입했다.

 “이것 좀 보세요. 전력계 보이시죠. 일정한 전력량이 공급되고 있으니 갑자기 전력량이 치솟아 사고가 날 염려도 없고, 뜨거운 열 때문에 웬만한 진드기나 곰팡이 걱정도 없습니다.”

 첫 번째 성공.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대량생산을 위해 금형을 제작해야 하는데 보일러를 만드는 작업이 잘 되지 않았다. 초음파를 이용하는 방법이 기술적으로 문제는 없었지만, 실제로는 플라스틱끼리 접착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듯했다. 여기서 그만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남들은 들어가기도 어렵다는 그 좋은 직장을 박차고 나온 결과가 겨우 이건가 싶어 화가 치밀었다. 자신에 대한 분노로 마음 속은 곪아가고 있었다. 지금껏 살면서 이처럼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결국 남편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말았다.

 “기운 내. 지금은 당신이 쉴 때가 아니야. 힘들다고 투정하고 주저앉으면 안 된다고. 당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시작한 싸움이잖아. 당신의 그 넘치는 자존심은 어디로 갔지?”

 그래, 내가 가진 패기와 오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더는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외톨이가 아니었다. 내게는 목숨과도 같은 가족이 있었다. 전적으로 나를 믿어준 남편에게,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집문서를 내미시던 부모님께, 그리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반드시 일어서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할 거라는 다짐, 지금 까먹은 돈의 몇십 배를 벌어들이겠다는 결의를 다지면서 다시 개발의 고삐를 당겼다.

 드디어 2001년 여름, 각종 전기제품관련 인증을 받고 3000대가 생산됐다. 5억원 가까운 개발비용과 3년이라는 시간, 온 신경과 노력을 쏟아 부은 끝에 탄생한 제품이었다. 이제야 결실을 맺는구나 생각하며 우리 모두는 감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테스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처음에는 괜찮지만 계속 사용하다 보면 점점 융착 부위가 벌어지는 것이었다. 그 분야 전문가라고 하는 사장님들, 그리고 업체가 모두들 괜찮다고 보증했던 방식이었지만 스팀발생기에는 한 번도 적용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문제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출시하더라도 당장 문제는 없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고객의 신용을 잃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당시 회사의 자금사정을 아는 직원들은 한결같이 큰 문제가 아니니 일단 출시하자고 했지만, 결국 눈물을 머금고 모든 제품을 폐기처분하기로 했다. 초도물량 3000대 전량 폐기. 그토록 성공에 목말랐던 때, 이를 악물고 내린 그 결단이 지금의 한경희스팀청소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rhahn@steamcleaner.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