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열린 우리나라의 WBC 경기와 관련한 인터넷 방송 클릭 수가 300만∼330만건에 달했다. 지중파TV로 시청한 사람은 140만명 정도라고 한다. 경기가 낮에 열린 탓이기도 하지만 인터넷으로 시청한 사람이 지상파TV 시청자 수를 넘어선 것은 이변이다. 뉴미디어의 성장으로 매체 이용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TV를 시청하는 IPTV는 이미 보편화됐다. 그런데 뒤늦게 IPTV를 허용하느니 마느니 하며 규제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우습고 한심스럽다. 급속한 기술 발달로 이제 세상은 엄청나게 변화했으며 계속 변해가고 있다. 케이블 방송사업자는 더는 방송프로그램만을 송출하는 사업자가 아니라 인터넷과 VoIP 음성통신을 함께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통신사업자도 통신 서비스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 IPTV와 같은 방송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 진보에 따른 새로운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는데도 이를 지원하는 법규·제도 및 기구는 여전히 과거 모습 그대로인 채 기술과 서비스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굳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격언을 무시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서비스에 기존 법 제도를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으므로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통·방융합에 따른 정책을 논의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소비자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진행돼온 다양한 논의가 이용자 복지증진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도외시한 이해 관계자 중심이었던 점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다음 몇 가지 개선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첫째, 소비자 선택기회가 확대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기술과 서비스는 시장에서 소비자가 검증하고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IPTV도 기술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가능하며, 얼마나 경제적인 방법이 될 수 있는지를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평가하고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방송법으로써 강제적으로 규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 법률 규제보다는 자율규제·정보공개·경쟁유지가 더 중요하다. 선진국에서도 문화적 다양성 증진, 이용자 보호 확대, 전자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진화 등을 적극 고려한 상태에서 규제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이 이용자 복지증진 원칙을 살려 합리적인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둘째, 보편적·공익적 서비스를 보장하도록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공익적 사회 기반서비스에 이용자의 보편적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는 통신부문의 보편적 서비스와 방송부문의 의무 재전송(must carry)이 있다. 또 방송부문에서는 문화적 다양성 보장이 통·방융합 서비스에서도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다. 따라서 통·방융합 서비스가 통신과 방송 속성을 모두 갖고 있음을 감안할 때 기존 통신부문과 방송부문의 공익적 요소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쟁을 통해 산업발전을 촉진할 수 있도록 규제정책을 최소화해야 한다. 현재 통·방 융합은 여러 결합서비스를 한 사업자가 제공함으로써 요금할인 혜택, 청구서 일원화 등 소비자의 경제성과 편리성을 제고할 수 있다. 또 통신사업자와 방송사업자 모두 고유영역 시장이 포화상태이므로 신규시장 창출을 위해 TPS 시장 진출 등 융합된 서비스를 적극 개발하고 추진해야 한다.
특히 통·방융합 환경에서 사업자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소비자 선택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규제기구 개편 △사업 분류체계 재정립 △수평적으로 규제체계 개편 △인허가 제도 개선 △소유 겸영 제도 개선 △요금·약관 개선 △기술표준 제정 등 다양한 정책과 제도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통·방융합 시장이 효과적으로 창출되기 위해서는 서비스 제공을 위한 관련 장비·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기술과 시장을 유연하게 연계할 수 있는 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임주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원장 chyim@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