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중학생이 죽었다. 수백만원의 휴대폰 이용료로 인한 심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달리한 것이다.
첨단 정보화시대로 접어든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는 심각한 분석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과연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종합적인 해결책 모색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난 한 해 이동통신사들이 벌어들인 성인콘텐츠 정보 이용료가 600억원에 달한다. 이에 수 배에 달하는 성인 콘텐츠 이용 시의 데이터 통화료를 합치면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말하자면 성인콘텐츠가 이동통신사들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셈이다.
그런데 최근 휴대전화의 성인 동영상 서비스에 대한 사법처리로 시작된 일련의 사태에 대한 해법으로 이동통신사들은 결국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사전심의를 요청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기관에 의한 사전심의의 위헌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가 문제의 적절한 해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선 급변하는 방송·통신 융합 환경과 테크놀로지 발달에 힘입은 신규 미디어들의 등장은 물리적으로 정부 차원의 사전 규제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과거 영화와 방송 등 소수 미디어에 대한 정부 차원의 효율적 규제가 가능했던 1970∼80년대로 회귀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시도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과 지상파DMB, 와이브로,고속하향패킷(HSDPA), IPTV 그리고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인터넷 방송사에 이르기까지 과연 정부 기관에 의한 규제가 실질적으로 가능한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과연 그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정부 차원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따른 운영상의 막대한 비용과 규제 기구의 비대함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일본·독일 등의 국가가 자율 규제의 틀을 채택하고 있음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제 우리는 콘텐츠 산업이 역동적으로 진화 발전하고 있고 그 적용 범위와 소비 행태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무엇보다 성인콘텐츠에 대한 심의 그 자체만으로 면죄부를 얻으려는 문제 해결 방법과 문제 인식 태도가 잘못됐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타율 규제 기관에 의한 사전 심의가 겉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을 따뜻하게 녹임으로써 거대한 빙산과의 충돌을 막으려는 시도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는 말이다.
업계의 진정한 책임 의식과 이용자 보호를 통해 건강한 성장을 추구하려는 윤리의식을 회복하고 이를 자율적으로 실행하려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또 다른 사회적 희생을 무책임하게 지켜봐야만 할 것이다.
이제 미시적인 측면에서 콘텐츠의 내용 적합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 주체가 모두 참여하는 자율 규제의 틀 속에서 다양한 현상과 문제점을 체계적이고 근본적으로 논의하고 거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며,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일일 것이다.
이제 막 태동기에 있는 자율규제의 새싹이 외적 보호막이 필요한 기업 자본과 이를 자신의 존재 기반을 넓히는 기회로 삼고자 하는 공적 규제 기구들의 형식 논리에 사장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현대원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dhyun@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