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는 그 뜻을 알지만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아니었다. ‘어릿광대’라는 표현 정도를 해야 ‘아∼’ 한다. 조금은 차이가 있지만 차라리 피에로(pierrot)라는 단어에 더 익숙했다.
관객 1200만명의 대기록을 돌파한 ‘왕의 남자’는 이미 사라진 광대라는 단어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다. 연산군과 광대 장생, 공길의 이야기를 여러 가지 갈래로 읽을 수 있지만 “나는 다시 태어나도 광대가 되겠다”는 장생의 혼잣말이 이준익 감독이 의도했던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왕의 남자에서 그려지는 광대는 자유 그 자체다. 공길의 말을 빌리면 ‘크게 한판 놀아보자’는 광대의 놀이판에는 두려울 것이 없다. 광대들은 당대의 최고 권력자가 부와 여자를 탐하는 못난 사내일 뿐이라고 소리친다. 녹수는 요부고 절대권력자인 연산군은 ‘마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것도 당사자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더욱이 재미있게 희화한다.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은 연극 영화인답게 취임사에서 광대론을 펼쳤다. 김 장관은 “제가 해석하는 광대는 남을 웃기고 즐겁게 해주는 어릿광대의 의미를 넘어서서 넓고(廣) 큰(大) 영혼으로 시대의 고통과 불화에 정면으로 마주서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감싸안고 표현하는 창조자를 말합니다”고 했다. 또 김 장관은 문화부 직원에게 “우리 모두 새로운 광대 정신으로 무장해 시대 변화의 한복판에서 치열하게 문화 행정을 펼치는 광대가 되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제시해봅니다”고 주문했다. 김 장관은 광대 정신을 그대로 살린 ‘창조자’의 예로 하늘에서 불을 훔쳐 온 프로메테우스를 내세웠지만 아마도 왕의 남자의 장생을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문화부 직원들은 왕의 남자를 다시 한번 봐야 할 듯하다. 장관이 취임사에서 주문한 소통과 상생, 상상력과 혁신, 팀워크, 현장 중심의 행정, 요약하면 ‘광대 정신’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하나 왕의 남자의 마지막 장면처럼 줄을 타면서 하늘로 날아오르지 말고 문화 산업의 현실에 발을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웃기기만 하고, 오히려 불쌍해 보이는 피에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문화부·이창희 부장 changh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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