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간 온 국민의 눈길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WBC를 향해 있었다. 야구 국가대표팀이 승리를 거듭할 때마다 2002년 월드컵을 연상시킬 만큼 대한민국이 들썩거렸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스템과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뛰어난 선수와 감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산업에서도 인재의 중요성은 스포츠에 못지 않다. 원자재를 사용하지 않는 순수한 인재중심 산업이자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창조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 게임산업 교류 활성화를 위한 인력양성 방안도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무엇보다 분단국 간 교류 활성화를 위해서는 상호 격차를 해소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당분간 우리가 게임 제작을 의뢰하고 북한이 이를 개발해 납품하는 형태의 교류는 지속되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게임개발자 양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북한에서 게임개발자의 산실이라면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을 꼽을 수 있다. 1946년 설립된 김일성종합대학 출신들이 조선콤퓨터센터, 조선과학원 프로그람 종합연구실 등 여러 곳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김책공업종합대학은 1948년 김일성종합대학에 포함돼 있던 공학부를 분리해 설립한 대학으로 컴퓨터학부와 함께 계산기연구소와 정보센터에서 교육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평양콤퓨터기술대학 등 북한 최고의 대학에서 소프트웨어(SW) 개발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게임개발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다.
연구기관으로는 1970년 북한최고의 연구기관인 조선과학원 산하에 프로그람종합연구실이 설립되면서 SW 개발과 함께 다수의 게임을 연구, 출시한 바 있다. 또 평양정보센터·조선콤퓨터센터·은별콤퓨터기술연구소 등이 이 분야의 기술발전과 인력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에는 SW 전반의 육성을 위해 설립된 기관 출신들이 SW의 한 분야로 게임을 개발하고 있으며, 게임만을 위한 학문적 논의나 교육프로그램은 미비한 상황이다. 게임의 상당부분을 프로그래머가 담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최근 동향은 기술력 못지않게 기획력과 비주얼, 즉 창의성이 중요시되고 있다. 따라서 남북 게임산업 교류의 토대로서 북한의 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국내와 같은 게임전문인력 양성시스템의 구축이 앞으로 숙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남북 공동 게임인력양성기관 설립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유사한 사례로 문화관광부가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을 통해 운영중인 게임아카데미에서 배출하는 인재들이 게임산업 현장에서 그 우수성을 입증받아 지난해 강릉·대전·대구·부산 4개 지자체에 지역 게임아카데미를 설립한 바 있다. 게임산업개발원에서는 커리큘럼과 강사, 교육 컨설팅을 지원하고, 지자체는 장비·시설·교육생 모집 및 운영을 담당해 해당 지역의 게임산업인력 양성은 물론이고 게임개발사 유치, 콘텐츠산업단지 조성 등 지역경제 전반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평양이나 개성 등에도 이러한 모델을 그대로 적용해 우수 인재를 양성한다면 남북의 게임산업 발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인력교류를 통한 경제적·문화적 격차를 해소하는 데 일조하게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 추진가능한 방법은 소규모, 간접적 지원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민간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 교류에서 프로젝트 단위의 기술교육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우리 개발자가 개성공단 특구를 방문해 북측 개발자와 미팅을 하고 부족한 부분을 지도해주는 식이다. 이를 좀더 구체화해 게임아카데미나 대학 등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교육교재를 보내주거나 인터넷으로 원격교육을 시행하는 방법도 현실적인 방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게임개발을 위한 원격교육은 한국게임산업개발원에서도 이미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돼 있어 사회적 공감대만 이루어진다면 큰 어려움 없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리라고 본다.
◆우종식 한국게임산업개발원장 jswoo@kgdi.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