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IBM을 떠나다
나는 결국 IBM 본사로 돌아가게 되었으나 돌아갈 부서는 내가 선택했다. IBM의 서비스 전문 자회사인 SBC라는 곳인데 SBC는 누구나 기피하는 IBM의 막장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부서를 선택한 이유는 깊이있는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하고 폭넓은 일을 배워볼 생각에서였다.
1964년 가을에 나는 뉴욕 SBC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근무를 시작한 지 반년 가량은 사실 무척 힘들었다. 서울에서 지낸 1년 반 가량은 무척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생활이었다. 그런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빡빡한 샐러리맨으로 돌아간다는 게 그다지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을 잊을 수 없다. 뉴저지주의 밀크맨커미션이란 우유 회사에서 사용하는 IBM장비에 문제가 생겼는 데 이 기계를 다뤄본 사람은 나하고 다른 한 사람 뿐 이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이 발뺌을 하는 바람에 내가 그 문제의 해결사로 나서게 된 것이다.
나는 원인부터 꼼꼼히 분석, 보통 3∼4일이 걸리고 길게는 1주일도 잡아먹었던 프로세스를 단 40분만에 마무리했다. SBC에서는 당장 승급이 이뤄지고 SBC 사장과 점심 식사까지 같이 했다. 밀크맨 사장이 내게 쫓아와 회사의 전산실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해왔으나 나는 스카우트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컴퓨터 일생을 걸 만한 곳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SBC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 캐나다 국세청의 문제를 해결했던 사례다. IBM 7074의 고객이었던 캐나다 국세청에서 컴퓨터 시스템의 세수 확인 목록의 일부가 사라져버리는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특히 이것은 세수에 관련된 사인이기 때문에 자칫 법적인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나는 캐나다 오타와로 출장을 갔고 그다지 어려울 것이라 생각지 않아서 인지 오타와에 가서는 문제발생 때까지 줄곧 골프를 즐겼다. 마침내 급히 와달라고 연락이 왔다. 골프복장으로 달려가 보니 문제는 생각했던 것 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막상 문제가 생기니 그 시간에 내가 골프를 치고 있었던 사실이 자꾸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그날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나는 밤을 새우며 기계와 씨름했다. 12시간 동안 식사도 하지 않고 화장실에도 가지 않았다. SW 모듈을 하나하나 점검해 보는 와중 마침내 문제점의 실마리를 찾고 나는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려 곯아떨어졌다.
미국에서 나는 개선장군 대우를 받았다. IBM에서도 엘리트들만 모여 있는 WTC의 고든 윌리엄스 사장이 직접 SBC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이다. SBC 사장은 기분이 우쭐해져 내게 전화를 걸어 수고했다며 칭찬했다.
연속되는 경영정보시스템의 일종인 프리즘 프로젝트 수행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 시기에 나는 또 다른 고민을 안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 수행 중에 몇 차례 내 윗 자리가 공석이 됐지만 그때 마다 난 승진에서 배제되곤 했다. 내가 항의하자 경영진은 변명을 늘어 놓다가 커뮤니케이션(영어)에 문제가 있음을 얘기했다.
나는 IBM에서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곳까지 왔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내가 여지껏 착각하고 있음을 안 것이다. 내가 귀국하고자 결단하게 되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