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비틀거리는 KAIST

박희범

 로버트 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의 연임을 둘러싸고 ‘총장-교수’ 간 밀고 당기는 장군멍군이 한창이다.

 KAIST 교수협의회가 지난 10일 전체 교수진 409명을 대상으로 총장직 계약 연장을 묻는 설문지를 돌리고 이를 공개하려 하자 러플린 총장이 발끈하며 교수 평가 결과도 발표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시끌시끌하다.

 러플린 총장은 비서를 통해 지난 22일 “이번 설문 결과는 공개하지 않기로 교수협의회 측과 합의했다”며 “만약 이 결과를 언론에 공개할 경우 개별적으로 실시한 교수 평가도 공개할 수 있다”며 엄포를 놓았다.

 지난해 초 러플린 총장의 사립화 추진에 반대하며 보직교수가 사퇴하는 등 난리를 친 지 1년 만이다.

 일단 교수협의회는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설문 결과는 이사회에만 통보한다고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지난 22일 열린 전체교수 총회에서도 설문 결과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설문 결과 교수진의 80∼90% 이상이 러플린 총장의 계약 연장에 반대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플린 총장은 지난 20일 열린 2006학년도 신입생 입학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채 휴가를 떠났다. 대학에서 가장 큰 행사이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목소리가 ‘원성’이 되어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10일의 설문 결과를 미리 받아 보고 ‘열받아’ 출국했다는 설과 미국식에 따라 당연한 휴가를 챙기고 있다는 둥 주변의 해석도 분분하다.

 교수협의회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차기 총장 후보추천위원회 위원 7명을 선정해 은근히 총장에 대한 간접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교수협의회 측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총장 임기 만료를 앞둔 시점에서 미리 차기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지만 밖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러플린 총장도 할 말은 많을 게다. 교수진이 오히려 개혁의 걸림돌이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더 잘하라는, 제대로 개혁을 추진하라는 충고라고 생각하고 싶다는 의견도 비서를 통해 내비쳤다. 이번 사태를 두고 보수 대 개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어쨌거나 총장과 교수진이 각자 따로 갈 길을 가는 듯한 KAIST를 보는 국민은 씁쓸하기만 하다.

경제과학부=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