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코맥스 변봉덕 회장(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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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스의 제품은 상급이지만 신용만큼은 세계 최상급입니다.”

 몇 해 전 해외 바이어에게 들었던 말이다. 농담처럼 무심히 건넨 그 한마디는 순간 내 가슴을 찡하게 했다. 제품은 꾸준히 투자하고 연구 개발하면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지만 오랜 협력 관계를 이어가는 힘은 무엇보다 동반자로서의 깊은 신뢰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 한마디는 내게 있어 더할나위 없는 극찬으로 다가온 것이다.

 사업이 한창 성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던 즈음의 일이다. 초창기에는 인터폰에 들어가는 스위치를 미공군 폐품 장비에서 빼내 썼는데 주문이 폭주하자 곧 한계상황에 맞닥트리게 되었다. 가격도 비쌌거니와 다량매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직접 제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납품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불량신고가 빗발쳐왔다. 원인은 바로 스위치 접촉 불량이었다. 이미 생산된 300개중 200여개의 물건이 팔려 나간 뒤였다. 자금압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당시, 그 모두를 새것으로 교환해주면 회사는 곧 위기에 처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는 망설임없이 특별 서비스팀을 가동했다. 일일이 우리 제품 구입처를 찾아다니며 정중히 사과하고 새 제품으로 교환해 주었다. 오로지 불량품으로 고객을 속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경제적 손실은 대단했고 우려했던 대로 회사는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의외의 수확을 불러들였다.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즉시 처리한 결과 오히려 고객들이 감동해서 도리어 우리 제품을 홍보해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회사에 대한 고객의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주문량은 더욱 늘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기업의 생명은 다름아닌 ‘신뢰’이며 기업 경영의 출발지점은 사람과 사람사이 그 관계에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나는 해외 에이전트와의 관계에서도 인간적 신뢰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

 우리의 해외 에이전트 중에는 20∼30년 이상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배경에는 ‘하나의 국가에 하나의 에이전트를 둔다’는 원칙이 있다. 여러 에이전트를 두고 서로를 경쟁시키기 보다는 하나의 에이전트가 자신의 나라만큼은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정책이 그것이다.

 여기에 국내 대리점에게 고객 서비스에 대한 의무를 부과했듯이 그들 역시 고객을 만족시키는 영업을 하도록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경쟁체제는 단기간 성장을 촉발할 가능성이 컸지만 우리는 파트너십을 선택했다. 사업 파트너간의 신뢰는 이익을 기반으로 두터워지며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 또한 아니기에 해외 에이전트들의 이익을 위해 회사가 손해를 감수하는 일도 여러차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지일관 그들을 신뢰하고 기다렸다.

 우리의 배려에 대한 보답은 고스란히 돌아왔다. 1998년 IMF 외환위기가 도래하던 시기였다. 해외 도처의 파트너들이 진심어린 위로와 함께 서로 도와주겠다며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신뢰는 정직과 신용을 기반으로 자란다. 이러한 경영 이념은 회사 조직 내에서부터 출발한다. 즉 경우에 따라선 실패까지도 용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창출돼야 한다. 몇 해 전 사원 한 명의 순간적인 실수가 엄청난 재정 손실을 초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대신 실수를 포용했다. 이듬해 특진과 함께 포상 대상자로 선정된 이는 다름아닌 그 사원이었다.

 궁극적으로 기업의 성공을 가늠하는 열쇠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 그것은 마치 배를 지탱해주는 밧줄과도 같다. 들여다보면 밧줄은 수없이 많은 가닥으로 엮여있다. 질기고 강해서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고객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신뢰 경영, 전세계 에이전트와의 상생 경영,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권위적 기업문화가 아닌 실패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동반 경영 마인드야말로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최고의 자산이다..

 bbduk@commax.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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