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범
네트워크 장비업계에 새삼 ‘기증’ 논란이 일고 있다. 기증 논란은 물론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관심이 집중되는 입찰 때마다 항상 벌어지곤 한다. 구매자나 공급자 모두 기증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항상 소문으로만 떠도는 것도 매번 동일하다.
이번 논란은 KIDC와 데이콤의 테라비트급 라우터 입찰에서 불거졌다. 우선 제품을 공급한 A사가 공짜로 기증했기 때문에 경쟁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소문이 터져 나왔다. 입찰에서 떨어진 B사의 하소연일 수도 있다. 기증했다 하더라도 A사를 직접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증 자체는 공급 사례를 늘리거나 장기적인 공급권 수주를 위한 기업의 마케팅 전략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구매자 역시 거저 주겠다는 데 마다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번에 기증 논란을 부른 테라비트급 라우터는 네트워크의 중심인 중요한 장비다. 구매자 측에서 충분한 검토와 시험을 거쳤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원하는 규격이 아니면 아무리 공짜라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터다. 성능이 비슷하다면 조금이라도 저렴한 쪽을 선택할 것이다. 기업 처지에서는 구매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추면 그게 바로 이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증, 즉 ‘공짜’라는 데 있다.
기증 논란 뒤에는 항상 독점 문제가 제기된다. 공급자나 구매자 모두 간과해서는 안 되는 대목이다. 그동안 국내 구매 기업들이 장비 공급업체들에 당해온(?)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매자 처지에서는 한 번 들여온 장비나 규격을 쉽게 변경하지 못하기 때문에 매번 공급자들에 끌려다니는 것이다. 처음에는 공짜나 싼가격에 들여왔지만 결과는 역시 ‘비지떡’이다. 장비가 전체 시스템에 녹아들어가 교체할 수 없는 단계가 되면 추가 장비 가격은 원상태로 되돌아가거나 점점 더 비싸진다. 구매자로서는 ‘독이 든 사과’를 받아든 셈이다.
물론 이번 KIDC와 데이콤 입찰에 대한 논란이 과거 사례와 같은 형태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구매를 담당한 곳 모두 국내 최고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불변의 진리가 하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다. IT산업부·홍기범기자@전자신문, kb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