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기업에 대한 일본의 견제다.” “히노마루(일장기) 공습을 위한 1차 방어전선 구축이다.” “과거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산업 강국이라는 명성을 찾기 위한 일본의 몸부림이다.” 일본 정부가 최근 확정한 하이닉스반도체 D램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 결정을 바라보는 우리 IT기업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하나같이 ‘한국 견제’라는 경고신호로 보고 있다.
이런 시각에는 일본이 처음으로 상계관세를 발동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상계관세는 반덤핑관세와 같이 다른 나라의 값싼 제품 유입에 대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때문에 상계관세 부과는 기본적으로 보호무역적 성격을 지닌다. 일본은 일부 자원보유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규모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일본으로서는 대외적으로 자유무역 추구 이미지를 표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보호무역적 정책으로 비쳐지는 상계관세 부과는 가능한한 자제해야 한다. 미국·유럽연합(EU)과는 달리 일본이 그동안 상계관세를 단 한 건도 물리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시기적으로도 저의를 의심하게 한다. 물론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이 겉으로는 미국의 하이닉스 상계관세 부과와 관련한 WTO의 판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하이닉스에 대해 채권단이 마지막 채무 재조정을 한 지 3년 이상이 지난 뒤에, 다시 말해 채무 재조정 효과가 거의 소멸돼 가는 마당에 이르러 향후 5년간 높은 관세를 물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런 정황은 한국 견제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일본의 한국기업 견제론은 느닷없이 등장한 게 아니다. 최근 몇 년 간 한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마찰을 한 꺼풀 벗겨보면 대부분 한국기업 견제와 관련된 것이다. 일본기업들이 삼성SDI, LG전자 등을 대상으로 특허권 침해문제를 제기한 것이나 ‘히노마루 반도체 공장’ 구상은 한국에 빼앗긴 산업 주도권을 탈환하겠다는 의도이다. 부품·소재의 한국 공급 제한 움직임 등 그간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산업적 견제에 일본 정부와 기업이 공동보조를 취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한국 견제론에는 한국 제품이 세계 시장 점유율이 높아가고 있는 데 대한 시샘이 섞여 있음은 물론이다. 메모리 반도체와 휴대폰은 한국의 1, 2위 수출품목이다. 세계 시장점유율도 높아 파급력도 크다. 여기에 새로운 수출효자상품으로 등장한 게 PDP·LCD·DVD 등 IT제품이다. 이들 제품의 공통점은 한국이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 세계적 상품으로 키운 것들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일본이 공세를 취할 경우 그때마다 곤욕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우리 IT제품의 성장은 한국경제에 좋은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도 던지고 있다. 간과해서 안 될 것이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업계 등에서도 ‘타도 한국’ 바람이 일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IT산업은 부침이 심해 1년만 허송세월하면 순식간에 위기에 처한다. 세계 가전업계를 호령했던 일본 소니의 쇠퇴가 말해준다. 세계 산업혁명의 역사에서 보듯 특정 산업이나 기술에서 영원한 1등은 없다. 따라잡고 또 따라잡히는 자리바꿈의 흥망사가 유독 우리에게만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더 기술적으로 고도화되고 부가가치도 높은 분야로 끊임없이 옮겨가는 유목민적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끊임없는 차세대 성장동력을 발굴해내는 정신만이 한국경제의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 이것은 정부와 기업이 함께할 일이다. 그래야 에너지가 잘못 낭비되지 않는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ET단상] 다양한 OS환경 고려한 제로 트러스트가 필요한 이유
-
2
[ET시론]AI 인프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해자(垓子)를 쌓아라
-
3
[보안칼럼]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개인정보 보호와 관리 방안
-
4
[기고] 딥시크의 경고…혁신·생태계·인재 부족한 韓
-
5
[ET시론]2050 탄소중립: 탄녹위 2기의 도전과 과제
-
6
[ET단상]국가경쟁력 혁신, 대학연구소 활성화에 달려있다
-
7
[콘텐츠칼럼]게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수립 및 지원 방안
-
8
[김종면의 K브랜드 집중탐구] 〈32〉락앤락, 생활의 혁신을 선물한 세계 최초의 발명품
-
9
[ET시론]양자혁명, 우리가 대비해야 할 미래 기술
-
10
[디지털문서 인사이트] 문서기반 데이터는 인공지능 시대의 마중물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