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은 원소스멀티유스(OSMU)가 가장 빈번하고 원활하게 이뤄지는 문화콘텐츠 장르다. 그 가운데서도 방송용 애니메이션은 OSMU와 가장 연관있는 분야로 현재 상황에서 집중 개척해야한다. 방송용 애니메이션의 본질적 가치는 방송에 필요한 방송물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방송용 콘텐츠로서의 기능만으로는 수익성을 보장받기 힘들기 때문에 방송사나 제작사는 차선의 수익 가치를 찾는다. 바로 상품의 홍보수단, 즉 TV가 광고 매체가 돼 상품인 애니메이션을 홍보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방송용 애니메이션은 주로 방송사와 애니메이션 제작사 중심으로 기획되고 제작되면서 상당히 발전해왔다. 반면 ‘돈버는’ 애니메이션은 아직 많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주체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간 100편 이상의 방송용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는 일본에서는 전체 애니메이션의 90%가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아닌 완구·게임회사·비디오유통사·음반사 주도로 제작된다. 만드는 목적을 분명히 한다는 얘기다.
물론 미국에는 커다란 광고시장이 있어 잘 만들기만 하면 방송만으로도 수익이 보장된다. 하지만 우리 지상파 방송사의 경우, 법에 묶여 하는 수 없이 한국산 애니메이션을 비싸게 구매하지만 애니메이션 편성시간의 광고수입은 적자일 수밖에 없다. 또 제작사는 방송사가 무리해서 비싸게 구매해줘도 총 제작비의 20∼30%도 확보할 수 없으므로 결국 다른 수입원을 찾아야 한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방송용 애니메이션만이 ‘상품판매의 마케팅 수단’이 돼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관련업계가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 상당수 업체가 외국산 애니메이션 라이선스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이른바 메이저 업체일수록 이 경향이 더 심각하다. 뜰지 못 뜰지 모르는 국산 캐릭터에 투자하는 불안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것이 반복될 경우 해외진출은커녕 국내시장 위축으로 경영상태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
둘째, 정부의 효과적인 정책도입이 필요하다. 정부는 4년 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을 발족시켜 지원정책을 꾸준히 내놓고 있으며 우리 콘텐츠 제작 수준도 눈에 띄게 발전했다. 반면 국내시장 활성화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아니다. 자국시장에서 평가받지 못한 문화콘텐츠는 해외에서도 절대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국내시장 활성화를 위해 먼저 방송법의 부분적 수정이 필요하다. 우리 방송법에는 애니메이션이 편성된 시간대에 그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 광고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나름의 일리는 있으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졌다. 예외를 둬도 방송 형평성이나 공공성에 크게 어긋나지 않을 듯하다. 상품의 제조 및 유통업체에 대한 정책지원도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제작에 집중지원해 왔지만 이제는 정말 돈을 벌 수 있는 곳에 과감한 투자가 요구된다. 부처 간 협력도 절실하다. 제작은 문화관광부, 제조·유통은 산업자원부에 속하고, 캐릭터는 어정쩡하게 양쪽 모두에 걸쳐 있다.
셋째, 중국시장 개척이다. 사실상 여기에 우리 문화콘텐츠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 세계시장에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미국이, TV용 애니메이션은 일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유일하게 재팬애니메이션의 접근이 어려운 시장이 중국이다. 중국시장을 발판으로 세계시장에서 재팬애니메이션과의 경쟁체제를 구축하자. 사업은 타이밍이다. 지금 정부와 업계가 하루라도 빨리 중국시장을 개척하지 못하면 재팬애니매이션과 막 싹트고 있는 중국업계 사이에 끼여 ‘중국시장’이라는 마지막 보루마저 잃게 될까 염려된다.
우리 정부가 중국 정부와 손을 잡고 중국 현지에 애니메이션 제작협력센터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해외 애니메이션의 규제가 심한 중국에서 한·중 공동사업 형태로 규제를 피하고 우리 상품화 업체의 중국 진출을 적극 지원해 유통경로 확보에 주력하자. 업체들은 관련조합이나 협회를 통해 공동으로 중국시장 개척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이 업계에 종사하면서 매일 느끼는 것은 인재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그 인재들이 다른 문화콘텐츠 선진국에서 몇 십년 동안에 걸쳐 해왔던 것을 불과 몇 년 만에 이뤄내고 있다. 이제 이들의 재주를 담을 그릇만 잘 만들어 준다면 몇 년 후에는 요즘 잘나가는 반도체나 자동차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정극포 지앤지엔터테인먼트 사장 jgp@gng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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