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칼럼]고쳐야 할 `실천 결핍증`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일이 커지기 전에 해결했으면 될 것을 미루다가 큰 힘이 들게 됨을 말한다. 그 원인은 실천 결핍증이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 규제기구 설립 건도 이런 유형에 속한다. 사전에 구획정리를 했으면 지금처럼 골머리를 썩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미 30여 차례의 세미나와 포럼 등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으나 걸리는 게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 정권에서는 이 문제 논의가 물 건너 갔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럴 법도 하다. 우선 당사자인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 지난 10일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인터넷TV(IPTV) 제도 정비 및 방송·통신 통합규제기구 설립과 관련해 내년 5월까지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공식 견해를 밝혔다.

 진 장관의 이런 발언에 이어 방송위는 방송·통신 통합규제기관 설립 논의를 주도해 온 ‘방송·통신구조개편단’을 11월 1일자로 축소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방송위는 지난 7월 신설한 이 조직의 단장을 포함한 일부 상근 파견직을 원래 소속으로 복귀시킨다는 것이다.

 정통부도 다소 변화가 있다. 하지만 골격 변화는 없다. 방송위의 통합규제기관 논의에 맞대응하기 위해 만든 ‘통신·방송융합전략기획단’은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최근 국장급 인사에서 단장을 다른 자리로 보냈다. 현재 단장은 공석이다.

 만약 두 부처가 규제기구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면 전담 조직을 축소하거나 단장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의 결정권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변수가 없는 건 아니다. 국회가 열리고 있어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 유승희 의원(열린우리당)은 통신·방송 융합 서비스 도입을 골자로 한 ‘정보미디어사업법’ 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국회도 이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장 여야가 국가 정체성을 놓고 대치하고 있다. 다음주에는 10·26 보궐선거가 있다. 정치적인 현안에 매달릴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내년도 예산안을 다루어야 한다. 노사안정, 경제활성화 등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현재 상황이 이러하니 통신과 방송 융합논의가 제대로 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부처 간 서둘러 업무 조정을 해야 할 것이 있다. 문화콘텐츠산업 분야다. 문화콘덴츠산업은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산업이다. 머지않아 문화콘텐츠가 왕인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중요한 차세대 성장동력이다. 이 콘텐츠 산업도 지금은 문화관광부와 정통부가 함께 관여하고 있다. 법안도 따로 마련했다. 그래서 이 분야도 제도와 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게 해당업계의 요구다. 실제 문화부는 문화산업진흥법과 음반 비디오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정통부는 온라인 디지털콘텐츠산업 발전법을 제정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핵심은 콘텐츠 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다. 그러나 이를 관장하는 부처가 두 곳이다 보니 해당업계로서는 사공이 둘인 셈이다. 정책 기능의 중복이나 혼선은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이 문제를 미룰 경우 제2의 통신·방송 융합 사태가 될 수 있다. 문화콘텐츠산업의 규모가 커지면 제도를 정비하기가 힘들 것이다. 이해 당사자 간 엄청난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이제 실천 결핍증을 고쳐야 한다. 그렇게 못 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된다.

 이현덕주간@전자신문, hd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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