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한 기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와 ‘중국의 샨다네트워크가 한국의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한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필자가 별 동요 없이 ‘아, 결국 그렇게 됐군요’라고 대답하자 그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샨다의 한국기업 인수는 예측가능했던 일로, 문제는 단지 시기였기 때문이다…중략…향후 또 다시 기자가 전화를 걸어올 때 ‘아, 결국 그렇게 됐군요’라는 자조적인 대답을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2004년12월 3일자 전자신문 열린마당 기고 중
불과 9개월여 전 샨다의 액토즈소프트 인수에 대해 이렇게 칼럼을 마무리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에 걸려온 기자의 전화에 필자의 첫 코멘트는 동일했다. “아, 역시 그렇게 됐군요.” 이번에도 주연만 다를 뿐 동일한 각본에 의해 동일한 드라마가 연출됐다.
얼마 전 그라비티가 일본의 소프트뱅크 계열사에 4000억원에 매각됐다. 소프트뱅크 자회사 중에 겅호는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의 배급사(퍼블리셔)다. 일본에서 유료사용자 100만명이 넘는 최대 온라인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는 겅호는 이제 개발과 배급사를 겸비한 명실공히 일본 최고의 온라인게임사가 됐다. 그라비티 최대 주주인 김정률 회장과 그 가족은 4000억원이라는 거금을 수확했다.
이번 매각에 대한 게임업계 CEO들의 반응 역시 액토즈소프트 당시와 유사하다. 표면적인 우려와 내면적인 부러움이다. 어떤 CEO는 “어차피 자본주의인데 누구에게 매각한들 문제될 게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주주가 지분을 매각했는데 그게 국내 회사건 해외 회사건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다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문화관광부 장관이나 정보통신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게임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과 협조를 그토록 요구하지 말았어야 한다. 대주주가 매각대금을 챙기고 떠나버리면 그만인 기업에 정부가 혈세를 쏟아부으며 지원해 줘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의 온라인게임 산업이 충분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면 게임사 하나쯤 외국에 매각됐다고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한국의 게임은 중국·미국·일본에 추격당하고 있으며 그 격차는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게임사가 이노베이터(혁신자)로서 초기 시장을 확립하고 있을 때, 기술과 시장의 문제로 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과 일본의 게임사가 이제 본격적으로 온라인게임 시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특히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아직 한국의 게임이 아시아에 머물러 있을 때, 동·서양을 제패한 최초의 게임이 됐다. 한국의 온라인게임 산업이 급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1조4000억원에 불과해 EA라는 미국기업 매출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
이제 한국의 게임사들도 산업을 확립한 혁신자와 그 결실의 수확자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신산업을 개척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한 기업이 후발자에게 추격당해 결국 자신의 자리를 내주었던 사례는 많다. D램 산업에서 인텔과 텍사스인스트루먼츠는 일본의 NEC나 도시바에 밀려나 CPU와 ASIC으로 사업을 선회했고, 그런 일본기업들 역시 90년대 중반 삼성에 밀려나 지금은 단 한 개 기업만이 남아 있다. 온라인게임이 콘텐츠산업 분야여서 제조업과 다르다고는 하나, 산업과 기업의 진화 법칙에서 벗어나 있는 ‘에이리언 산업’은 아니다.
한국 온라인게임의 당면 과제는 글로벌화다. 개발의 글로벌화, 마케팅의 글로벌화, 퍼블리싱의 글로벌화 그리고 경영의 글로벌화가 바로 과제다. 국내에서 한국인 개발자가 개발한 게임을 해외에 라이선싱으로 팔아 넘기면 그만인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게임 개발에서 국내외 개발자를 함께 관리해야 하며, 해외 배급과 서비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하는 때다. 이런 도약을 통해 한국 온라인게임 산업은 해외로 유출되는 기술과 노하우보다 더 큰 경쟁력을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 jhwi@ca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