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지난 5월 지방자치단체 정보화 프로젝트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A 컨소시엄은 두 달이 지난 현재까지 최종 계약을 위한 막바지 협상을 진행중이다.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이후 지자체가 내놓은 과업 변경을 골자로 한 요구 사항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내놓은 요구 사항에는 당초 입찰제안요청서(RFP)에 없던 내용이 새롭게 추가됐다. 수 차례 이견 조정을 통해 대부분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A 컨소시엄은 지자체의 RFP 자의적 해석에 아직도 혼란을 겪고 있다.
사례 2=B업체는 중앙공공기관 프로젝트 수주 이후 발주기관이 난데없이 과업 수행 장소를 ‘특정 지역’으로 한정한다는 황당한 요구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당초 RFP에는 사업의 안정적 수행을 위한 과업 수행 장소와 관련, 독립적으로 구성·운영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도록 제시됐을 뿐 ‘특정 지역’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B사는 발주기관의 이 같은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고 천신만고 끝에 ‘특정 지역’에 과업 공간을 마련, 사태 확산을 차단했다.
각종 정보화 프로젝트를 둘러싼 발주기관의 과다·무리 요구에 시스템통합(SI) 업계의 숨죽인 한숨과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SI 업계의 고민과 한숨이 깊어질수록 협력 관계인 중견·중소 IT 전문업체의 고민과 한숨 또한 깊어지고 있다.
SI 업계에 비해 영세한 중견·중소 IT 업체는 프로젝트 착수 지연으로 간접비용 증가 등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의 위기를 겪곤 한다.
A 컨소시엄 관계자는 “과업 변경과 요구 사항 증대는 곧 프로젝트 비용 증가로 나타나는데 발주기관은 이에 대한 보상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며 “발주기관의 이 같은 행태는 기업을 운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업 망치는 풍토를 만들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SI 업계는 발주기관과의 역학 관계를 고려할 때 드러내놓고 이의와 불만을 제기할 수 없는 구조라는 데 고민하고 있다.
‘갑’이 요구하는 바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겪게 되는 향후 사업 참여 불가와 기업 이미지 및 신뢰도 추락 등 각종 불이익과 후폭풍을 과거 수 차례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이 이른바 ‘힘 있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한정된 게 아니라며 SI 업계는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민간 기업이 추진하는 정보화 사업을 수행한 C사는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대금 지급 과정에서 발주기관이 터무니없이 현물 교환 방식을 요구했지만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수주와 발주를 둘러싸고 전형적 ‘갑(甲)’과 ‘을(乙)’이라는 관계를 고려할 때 발주기관의 변신이 없는 한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게 SI 업계의 불만 섞인 하소연이다.
SI 업계는 이 같은 현상의 근본 요인 중 일정 부분이 SI 업계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즉 과거 수익 여부와 관계없이 레퍼런스 확보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수주 관행이 발주기관의 이 같은 행태를 조장했다는 자성론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B업체 관계자는 “‘갑’과 ‘을’이라는 역학 관계상 발주기관이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발주기관이 사업자를 진정한 동반자로 간주하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라고 말했다.
김원배기자@전자신문, adolf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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