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구관영 에이스테크놀로지 사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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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술개발만이 살 길이다.

 에이스테크놀로지는 지난 7월 1일 창립 25주년을 맞았다. 짧지 않은 세월 속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도전과 성공,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다. 어려운 고비마다 함께 해준 임직원들과 가족이 있었지만, 사업초기에는 혼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더 많았다.

 경영자의 길을 걸으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스스로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나는 결단의 순간마다 어떠한 결과에 대해서든 책임을 지고, 배우는 자세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에이스테크놀로지는 1980년 명성무역으로 출발하여, 카폰 안테나와 차창에 부착하는 일명 온-글라스(On-glass) 안테나로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조금씩 이름이 알려졌다.

 나는 회사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와 개발능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연구인력의 확보가 시급한 문제였다. 그러나 유능한 인재가 아직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규모의 회사에 입사할 리 없었다. 우선 1986년 회사 이름을 에이스안테나로 바꾸고, 본격적인 안테나 제조업체로서의 이미지를 갖추었다.

 1990년대는 우리나라 이동통신의 개화기였다. 무선호출 사업에 이어 이동전화사업에도 경쟁이 허용되었고, PCS라는 새로운 이동전화 방식이 보급됨에 따라 우리나라 이동통신 사업은 백화제방(百花齊放)의 발전기를 맞이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나는 안테나만으로 승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이동통신용 소형 안테나 전문 업체에서 고주파(RF) 부품사업으로 사업다각화를 결심했다.

 RF사업 진출에 대해서 가까운 사람들조차 시기상조라고 말렸다. 나 또한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투자 비용이 만만찮았다. 측정장비 1대 금액이 내가 사는 아파트 2채 값을 웃돌았다. 그러나 나는 몇 개월의 고심 끝에 RF사업 진출을 강행했다. 인력과 연구실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90년 3월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조그만 통신기술 연구소를 설립했다.

 “직원이 몇 명 되지도 않는 회사에서 무슨 연구소를 따로 차립니까? 구 사장 요즘 자금 사정이 좋은가 봅니다.”

 경쟁업체들은 에이스안테나의 연구소 설립을 비웃었다. 자금의 여유가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인재를 영입하고 연구소를 운영하는 데 자금을 아끼지 않았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해외 바이어들이 직접 연구소를 방문하고, 에이스의 열정과 실력을 확인하면서 계약은 이전보다 쉽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1993년에는 국내에 무선호출의 제2사업자가 탄생하면서 무선호출의 전성기를 맞았고 우리 제품은 무섭게 팔려 나갔다. 1995년에 안테나와 더불어 RF 부품이 기지국 장비와 중계기로까지 확산되기 시작하자, 사업구도가 정리되면서 안정을 찾았다. 또한 1996년 6월에는 세라믹 필터 개발 공적으로 ‘장영실상’을 수상하며 RF 부품 제조업체로서 확실한 기술우위를 굳힐 수 있었다.

 gimmykoo@aceteq.co.kr

사진: 1995년 에이스테크놀로지가 RF 필터를 처음 개발할 당시, 구관영 사장이 연구진과 함께 측정결과를 살피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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