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태양’은 무서운 속도감으로 우리들의 세포를 짜릿하게 만들어주는 영화다. 속도감을 만들어내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인라인 스케이팅이지만 사실은 그것을 즐기는 청춘들의 내면이며 그것을 포착하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다.
‘태풍태양’은 감각적 청춘영화이면서, 성장 영화이고, 스포츠 영화이다. 저항정신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러한 도전 정신이 세계 부정-세계 긍정의 역동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고양이를 부탁해’로 질풍노도의 청춘시절을 통과해가며 내면의 성장통을 앓고 있는 이십대 초반 여자들의 아픔을 드러내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정재은 감독은, 이번에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의 남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자아가 세계와 맞부딪치는 접점을 보여준다. 여기서도 정재은 감독은 시각적 화려함과 속도감에만 함몰되지 않고 카메라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헤집는다.
그러나 우선 ‘태풍태양’을 사로잡는 것은 속도감이다. 김병서의 감각적 촬영과 신민경의 편집으로 멋지게 그 모습을 드러낸 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팅의 매력은 상당하다. 일반 인라인 스케이팅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속도감이 강한 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도심의 빌딩 숲 사이를 질주하거나 지하도 혹은 공원의 쇠 난간을 타고 각종 묘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의 모습은 역동적 땀 냄새를 물씬 풍겨준다.
정재은 감독은 스포츠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관심은 거대한 세계 속으로 편입되어가는 젊은 청춘들의 고통스러운 통과제의다. 부모가 해외로 피신하고 아파트에 혼자 남은 고등학생 소요(천정명 분)는 공원에서 만난 인라인 스케이터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한다.
즉 ‘태풍태양’은 십대 후반 청소년의 눈에 보인 이십 대 초반 청년들의 갈등과 고뇌들이 형상화되어 있다. 소요의 관찰자적 시선에 의해 인라인 스케이팅의 1인자 모기(김강우 분)와 갑바(이천희 분)의 갈등, 그리고 모기의 연인이면서 소요을 매혹시키는 한주(조이진 분)가 모습을 드러낸다.
‘태풍태양’의 강점은 파워풀한 에너지와 속도감 넘치는 젊음의 솟구치는 피가 싱싱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구조는 약하다. 인라인 그룹 내에서 자유주의자 모기와 조직의 단합과 인화를 우선시하는 갑바의 대결은 너무 상투적이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그들의 관계를 비틀거나 뒤집거나 도전적인 내러티브의 모험은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드라마의 내적 갈등은 다소 밋밋하다.
정재은 감독은 모기에게는 최고의 인라인 기술을 부여하면서 자유주의자의 방황과 갈등을 선사했고, 갑바에게는 조직을 끌고 갈 파워 넘치는 힘을 부여했다. 이들이 맞부딪치는 모습은 그러나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것들이다. 감독이 사랑한 사람은 모기이겠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관찰자적 시선의 소요에게 관객들은 오히려 동화된다. 또 한주의 카메라가 갖는 의미도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신인인 배우들의 연기는 여전히 미숙하다.
그러나 ‘태풍태양’은 의미 있는 영화이다. 세계와 치열하게 부딪혀 가는 진정성이 살아 있다. 세계와 불협화음을 겪을 수밖에 없는 질풍노도의 청춘시절이 그 속에는 아프게 묘사되어 있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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