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사ㆍ금융권 IT자회사 설립 `참을 수 없는 유혹`

제2의 그룹 IT 자회사 설립 붐이 다시 도래할 것인가. 과거 80년대 이후 유행처럼 번졌던 그룹 전문 IT 자회사 설립 바람이 최근 들어 새로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난 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현대, 대우, LG 등 굴지의 그룹들이 해체되거나 계열 분리됐고 10위권 밖의 중견그룹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면서 IT를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금융권의 인수합병으로 인한 금융 지주회사 출현도 이런 흐름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어디가 움직이나=제조업에서는 동국제강의 행보가 초미의 관심사다. 자산 규모 국내 15위인 동국제강그룹은 그룹 최고경영층에서 ‘통합을 기반으로 한 그룹 시너지 효과’를 핵심 전략으로 세웠다. 모기업인 동국제강은 한국IBM과의 아웃소싱 계약이 올해 만료된다. 동국제강은 경영혁신(PI) 차원에서 그룹 중장기 IT 인프라 전략을 수립중이며, 오는 7월 중 IT 전문 자회사 설립 여부에 대해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릴 방침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일단 시너지 효과 측면에서 통합은 최선의 선택”이라며 “인프라를 통합한 이후 운영 주체를 제3자에게 맡길지 또는 직접 할지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계열사별로 있는 소규모 IT 기업을 합병, 전문 IT 기업을 설립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점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하나은행의 IT 자회사 설립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나은행은 최근 ‘하나금융지주회사 설립추진위원회(위원장 윤교중)’를 공식 발족했으며, 하나은행 금융그룹 차원의 ‘전산 인프라의 공동 이용’에 대한 원칙을 세웠다. 하나은행은 연말이나 내년 초쯤 IT 자회사 설립에 관한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신한금융지주회사·조흥지주회사나 한국투자금융지주회사의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동원금융그룹에서 변신한 한국투자금융지주회사는 ‘한국투자증권(동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통합법인)에서 IT 거버넌스 차원에서 관계사의 IT 인프라를 정비, 운영한다’는 원칙을 세운 만큼 이런 전략이 자회사 설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차세대 프로젝트를 시작한 신한금융지주회사는 IT 자회사 설립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운영 측면에서 어떤 형태로든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움직임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밖에 계열 분리한 그룹들의 움직임도 주목을 받고 있다. LG에서 분리한 GS그룹이나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현대중공업그룹은 기존 LG CNS나 현대정보기술과 아직까지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별도 자회사 설립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기적으로는 자체 역량 강화 차원에서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또 자회사는 아니지만 SI 분야의 신흥 주자로 떠오른 KT의 행보도 지켜볼 만하다. KT는 최근 SI·NI사업단 명칭을 SI사업단으로 바꿨으며, 이달 중 분당 KT 사옥에서 삼성동 글라스타워로 조직을 옮긴다. 분사는 아니지만 중장기적으로 5000억원 정도의 매출 달성을 목표로 세운 만큼 웬만한 독립 기업 수준의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예견된다.

 ◇전망=이런 현상에 대해 업계에서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의 시각이 교차한다. 우선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시장이 외산 일색인 상황에서 그나마 그룹을 기반으로 한 IT 서비스 업체의 설립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는 견해가 있다.

 과거 그룹들이 선택한 관계사 IT 인프라 통합과 전문 자회사 설립이 전자정부를 비롯해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되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또 이후 IT가 비즈니스와 직접 결합해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는 유비쿼터스 시대를 대비할 경우 서비스 능력을 갖출 명분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시각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SI라는 산업 구조로 인해 왜곡돼 있는 IT 수요 공급의 문제점이 더욱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출발한다. 특히 이미 선발 기업들이 대외 사업에서 수년간 시행착오를 겪은 상태에서 전문기업 출현이 산업 전체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는 비판이다.

 어쨌든 ‘제2의 그룹 IT 전문기업 설립’으로까지 볼 수 있는 최근 현상에 대해 다른 것은 몰라도 IT 아웃소싱과 서비스 시장에서 외국 유수 기업의 설자리가 더욱 좁아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에는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다.

 신혜선·이정환기자@전자신문, shinhs·vict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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