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다양한 인간의 욕구와 디지털기기·서비스·정책·제도 등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 시대가 왔다. 시각에 따라 디지털홈, 홈네트워크, 텔레매틱스, 유비쿼터스 등 제각각 규정도 다르지만 디지털 컨버전스는 인간의 삶을 통해 구현되는 디지털 문화의 총체를 일컫는다. 디지털 컨버전스는 단말기나, 기계의 결합을 일컫는 협의 개념부터 기계적 문명의 진화로 나타나는 인간 삶과 철학, 법·제도의 통합과 관련한 제반 현상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까지 형식과 내용이 다양하다.
디지털 컨버전스는 통신과 방송의 결합, 유선과 무선의 결합, 단말기 기능의 결합처럼 단순한 물리적 결합을 일컫는 개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컨버전스는 기계적 결합은 물론 문화적 패턴의 변형까지도 수반되는 경향으로 정의돼야 한다. 기기의 결합 차원이 아닌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기계의 커뮤니케이션 현상과 사회적 제도, 문화, 철학으로서 디지털 컨버전스가 재점검돼야 할 것이다.
◆융합과 결합의 구분이 중요=컨버전스 시대에 결합과 융합을 구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결합은 기기와 기기의 통합, 이를테면 프린터와 복사기가 합쳐진 복합기 형태로 나타난다. 기계와 기계가 결합돼 하나의 기계는 컨버전스 단말기가 아니라 ‘복합기’일 뿐이다. DVD플레이어와 비디오레코더를 합쳐 만든 ‘콤보’제품도 마찬가지다.
우리 산업계에는 이처럼 복합현상을 융합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짙다. 이동전화·디지털카메라·MP3플레이어·게임기·TV·신용카드·네비게이션단말기 분야에서 나오는 단말기는 많은 숫자가 컨버전스 단말기라기보다 복합기 수준에 불과하다. 이동전화는 MP3플레이어와 카메라 기능을 넣으면서, 게임기는 TV 및 네비게이션 기능을, MP3플레이어는 개인종합단말기 형태로 진화하면서 이동전화, 디지털카메라, 전자사전, 노트북 기능을 첨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디지털 컨버전스로 규정한다. 단말기 간의 결합을 컨버전스로 착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물론 이러한 결합이 컨버전스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디지털 컨버전스가 되려면 단말기와 단말기의 물리적 결합에서 끝나지 않고, 사람 대 사람을 연결하는 삶과 결합돼 떼어 놓기 어려운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화학적 반응이다. 기기와 기기를 섞어 놓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의 행동양식과 생활습관, 사고의 변화가 수반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컨버전스는 인간 욕망의 통합=디지털 컨버전스는 기술이 아니다. 문화다. 디지털 컨버전스는 유선과 무선, 방송과 통신, 통신과 컴퓨터 분야에서 기술·산업·서비스 변화 뿐 만 아니라 사람의 생활습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MIT 미디어 랩 등 일부 대학에서는 디지털 컨버전스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미디어의 이해’의 저자인 마샬 맥루한의 연구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전기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개념에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의 발견으로 얼마나 많은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변화했으며, 사람의 삶의 양식이 바뀌었는지 주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커뮤니케이션 하고 싶은 인간 욕망의 확대, 공간의 확대, 시간의 확대 등이 디지털 컨버전스의 핵심이다. 그것은 인간 대 인간일 수도 있고, 인간 대 기계, 인간 대 환상으로 이어지는 시공간의 확장이기도 하다. 이 관점에서보면 기계와 기계의 결합은 인간의 삶의 패턴을 변화시키는 도구에 불과하다.
디지털 컨버전스를 이해하려면 인간의 삶의 양식과 욕망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사람에 대한 연구가 기본일 때 컨버전스 경향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기업의 제휴와 협력관계를 보자=디지털 컨버전스의 미래는 어떻게 구현될까. 업계의 고민이 심각하다. ‘휴대폰이냐, MP3플레이어냐, PMP냐, 오토PC냐, 디지털홈서버냐, 텔레매틱스단말기냐’ 하는 고민이 대다수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고민은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 소비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소비자 생활에 대한 과학적 예측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디지털컨버전스는 기기의 결합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정리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에 대한 연구는 언제나 예측에서 벗어난다는 점이다.
이같은 고민은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삼성전자·LG전자·마쓰시타·소니·애플 등은 최근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분석을 강화하고 있다. 디지털컨버전스에 대한 예측을 위해 커뮤니케이션학, 심리학, 의학, 가정학, 정치학, 사회학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해결되지 않는다. 이들은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뭉치기’를 좋아한다. 규모가 큰 기업간의 합종연횡이 그것이다.
인수합병은 물론이거니와 경쟁관계의 기업끼리도 전략적 제휴를 모색하고 있다. 마쓰시타와 LG전자, MS와 삼성전자·LG전자의 결합, 애플과 소니의 밀월관계 등이 그것이다. 이를 테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보험을 들고 있는 셈이다. 인간에 대한 연구결과를 서로 공유하고, 서로 힘을 합쳐 다른 방식의 디지털컨버전스라는 경향을 읽는 부류를 견제하기 위한 행동이다. 반드시 옳지는 않겠지만, 이들의 움직임에 동참하는 것도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디지털 컨버전스는 기술과 기술의 결합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음이다. 그것은 기술혁명이라기 보다 문화혁명이 될 수 밖에 없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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