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 뛰어드는 방식은 스승을 모시는 배사의식 외에 하나가 더 있다. 방회(幇會)의 입회가 그것이다. 무림조직은 문파와 방회로 크게 구분되는데, 문파는 배사의식, 혹은 입문의식을 거쳐 들어간다.
방회는 입회식을 통해 들어간다. 그럼으로써 무림조직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사제관계로 이뤄진 문파와 달리 방회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 뜻은 정치적인 목표나 이념일 수도 있고 경제적 이득일 수도 있다.
실제로 중국의 역사에 존재했던,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는 방회조직의 예를 들어 보자.혹시 삼합회(三合會)라는 이름을 들어봤는지. 중국, 그 중에서도 홍콩의 암흑가를 지배하는 단체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조직폭력배쯤 되겠다. 한성대 국제마약학과에서 강의하는 조성권 교수의 ‘홍콩반환과 삼합회의 변화 전망’이라는 논문은 삼합회의 기원은 정치결사설과 이익집단설이라고 말한다. 달리 표현하면 홍방(紅幇)설과 청방(靑幇)설이라 부를 수 있다.
홍방설은 이렇다. 만주족이 지배하는 청나라가 건국되면서 기존의 중국인들 특히 한족을 중심으로 반청복명운동, 즉 청나라를 물리치고 명나라를 복원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청나라가 건국된 후 황제는 소림사를 불태워 버리고 승려들을 잡아 죽여 소림사의 맥을 끊으라고 명령했다(이건 사실이 아니지만 민간전설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강남으로 도망간 소림사의 승려들이 1674년 중국 남부 복건성의 복주 인근에서 새로운 소림사를 만들고(그래서 이걸 남소림사라고 부른다. 실제로는 없다. 역시 민간전설이다), 소림사 출신의 승려 108명이 반청복명 단체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홍방(洪幇)이라 했는데, 이는 명나라의 초대황제인 주원장의 연호인 홍무에서 따온 이름이다. 후에는 홍문, 홍문회, 천지회 등의 이름으로 불리다가 근대에 와서 붉을 홍자를 써서 홍방이라 불렀고, 지금은 삼합회로 통칭된다. 이것이 삼합회의 소림사 기원설이다.
이들은 정치적 신념을 달성하기 위해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의 난, 백련교도의 난, 의화단의 난 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이들은 손문의 혁명운동에도 관여해 일정한 역할을 했고, 결국 혁명은 성공했으니 근대 중국을 만든 주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홍방은 주로 천지회라는 이름으로 무협소설과 영화에 등장한다. 김용의 처녀작 ‘서검은구록’은 천지회의 당대 회주였던 진가락을 주인공으로 한다. 김용의 마지막 작품인 ‘녹정기’는 바로 진가락의 양아버지이자 전대 회주였던 진근남의 제자 위소보가 주인공이다. 여기에는 위소보가 천지회에 가입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소림사가 불태워지고 승려들이 도주하는 이야기는 1920년대에 중국의 평강불초생이라는 작가가 ‘강호기협전’이라는 소설로 묘사했고, 1928년에 ‘화소홍련사’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최초의 중국 무협영화다. 이 영화는 그후 여러 번 리바이벌 되었는데 1994년 판은 쉽게 구해볼 수 있다.
방세옥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도 여러 편 제작됐다. 내용은 주로 방세옥이 천지회주인 진가락의 제자가 되어 활약하는 이야기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육하체라는 제자를 뒀고 육하체는 황기영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이 황기영의 아들이 바로 황비홍이다.
영화 ‘황비홍’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성룡이 주연한 영화 취권의 주인공 이름도 황비홍이다.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하는 아들 때문에 고민하는 아버지 이름은 당연히 황기영이다.
물론 이 모든 관계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단지 많은 소설과 영화를 통해 만들어진 전설이 이렇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절반쯤 재미로, 절반은 진짜로 그렇게 믿고 있다. 사실 무림이라는 세계는 얼마만큼은 진실에 발을 디디고 있지만 그 진실을 허구가 둘러쌈으로써 이뤄진다.
삼합회의 청방기원설은 이렇다. 청방은 원래 안청방(安淸幇)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그들의 전설에 의하면 청나라 조정이 초기에 강소성의 양주에서 북경 부근 통주까지 이어지는 대운하를 통해 미곡을 운반하는 권리를 한민족 회유책의 하나로 전(錢), 옹(翁), 번(瀋)의 성을 가진 세 사람에게 주었는데, 이 세 사람이 조직한 비밀결사가 청방이다. 홍방과 달리 반체제 측에 선 것이 아니라 체제옹호의 입장을 취한 것이다. 물론 이익 때문이다.
그래서 안청방이라는 이름 자체가 청조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게 후일 청방(淸幇)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이들은 철저하게 이익을 위주로 움직인 것 같다. 대운하가 막히자 시가지로 옮겨 조직폭력배가 됐고 손문의 중화민국 개국 후에는 아편굴, 도박장, 창녀촌 등으로 돈을 벌었다.
후에는 장개석의 반공 쿠데타에도 참여해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하는 데 일조했다고 한다. 정치권력과 유착된 조직이기도 했던 것이다. 당시 청방의 방주였던 두월생은 상하이의 황제라고 불리기도 했다니 그 위세를 짐작해볼 수 있다.홍방과 청방은 이 시기에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바로 두월생에 의해서였다. 그는 원래 홍방 출신이었는데 청방의 방주를 암살하고 자신이 청방의 방주가 된다. 그리고 기존의 홍방과 카르텔을 결성해 장개석이 중국을 점령하고 있는 시기에 중국의 아편거래를 독점했다. 이 두월생의 아들이 중국의 공산화 이후에 휘하 졸개들을 데리고 홍콩으로 건너가 현대 삼합회의 세 축 중 하나인 14K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중국의 암흑가를 중국인들은 흑사회(黑社會)라고 부른다.
홍방의 입회의식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강효백이 쓴 ‘차이니즈 나이트’라는 책에 잘 소개되어 있다. 입회식은 한밤중 외진 곳에 있는 사당에서 치러진다. 사당에 충의당이라는 현액을 내걸고 제단을 마련하고 인진사니 전도사니 하는 증인 역할을 하는 인사들을 초빙한다.
제단에는 홍방을 빛낸 선배들의 위패를 놓는다. 거기서 무릎을 꿇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세 번 반복하는 ‘삼궤구고’의 절을 올린다. 2회에서 언급한 삼배구고와 같은 뜻이다. 의례가 끝나면 조직의 중간 보스가 조직의 규칙을 조목조목 읽어준 후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게 한다.
그 뒤 향을 왼손에 큰 칼을 오른손에 들고 ‘오늘의 맹세를 어기는 자는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외치며 향을 칼로 베어버린다. 청방의 입회의식은 약간 다른 것도 있지만 거의 비슷하므로 설명을 생략한다.무협작가로 ‘대도오’, ‘생사박’, ‘혈기린외전’ 등의 작품이 있다. 무협게임 ‘구룡쟁패’의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제작하는 인디21의 컨텐츠 담당 이사로 재직 중이다.
[사진설명 : 사진 순서대로..]
◇ 삼합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 무간도
◇ 주성치와 임청하가 주연했던 영화 녹정기
◇ 진가락의 초상화. 홍화회 총타주 진가락이라고 씌어 있다. 홍화회는 천지회의 다른 이름.
◇ 영화 진가락
◇ 영화 영웅 진가락
◇ 1994년 판 화소홍련사
◇ 영화 방세옥
◇ 영화 황비홍
◇ 황비홍의 실제 모습이라고 한다.
<좌백(左栢) jwabk@freechal.com>
많이 본 뉴스
-
1
스타링크 이어 원웹, 韓 온다…위성통신 시대 눈앞
-
2
단독CS, 서울지점 결국 '해산'...한국서 발 뺀다
-
3
LG 임직원만 쓰는 '챗엑사원' 써보니…결과 보여준 배경·이유까지 '술술'
-
4
美 마이크론 HBM3E 16단 양산 준비…차세대 HBM '韓 위협'
-
5
[전문]尹, 대국민 담화..“유혈 사태 막기 위해 응한다”
-
6
초경량 카나나 나노, 중형급 뺨치는 성능
-
7
'파산' 노스볼트,배터리 재활용 합작사 지분 전량 매각
-
8
NHN클라우드, 클라우드 자격증 내놨다···시장 주도권 경쟁 가열
-
9
BYD, 전기차 4종 판매 확정…아토3 3190만원·씰 4290만원·돌핀 2600만원·시라이언7 4490만원
-
10
DS단석, 'HVO PTU 생산' SAF 원료 美 수출 임박…유럽 진출 호재 기대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