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직전,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만들어서 해외에 팔 수 있는 제품이 거의 없어질 것 같다고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또 우리나라의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지난 몇년 간 제조업 공동화 문제를 걱정해 왔다. 동남아 쓰나미 발생때 동물 사체가 거의 없었던 것은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이를 먼저 감지했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기업경영자들은 다가오는 산업 현장의 위기를 느끼는 감각이 상대적으로 탁월한 모양이다.
필자는 뒤늦은 제조업 공동화가 아니라 R&D 공동화, 지식 공동화를 걱정한다. 지금 우리 기업이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팔 수 있는 물건은 기본적으로 기술력이 뒷받침된 것이고 아주 소수의 대기업만이 R&D 능력에다 브랜드, 마케팅 혹은 혁신 능력, 경영 능력까지 갖추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황이다. 현재 치열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일부 일반 기업들은 그나마 R&D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들의 브랜드, 혁신 능력, 경영 능력 등은 세계 기업과 경쟁하기에는 아직 역량이 미흡하다. 사실 제조 능력에서 우위를 보였던 수많은 중견·중소기업이 R&D 능력을 갖추지 못해 지난 5∼10년 동안 경쟁대열에서 탈락해 버렸다. 오늘 R&D 능력으로 경쟁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들이 다가오는 5∼10년 후에도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R&D 공동화 문제는 결국 이공계 위기론과 맞닿는다. 지난 2003년 KOTRA가 외국인 투자기업 부설연구소의 CTO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연구개발 여건에 있어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지목한 것은 양질의 연구인력 확보 문제였다. “한국은 지난 60∼70년대 과학기술인 우대 및 청소년들의 이공계 선망 분위기가 80∼90년대의 고도성장을 낳았으나 2000년대 초 이공계 기피현상을 보면 2010년 이후 한국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미국의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의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도 이공계 위기를 겪고 있지만 수많은 해외 인재가 유입돼 이공계 공부를 하고 그들이 미국에 남아 이공계 직종에 종사하면서 어느 정도 이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이공계 졸업생 비율이 41%로 세계 1위이지만 인재가 이공계를 기피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마 넘쳐나는 이공계 인력 가운데 연구개발 능력을 갖춘 소수만이 자기 자리를 유지하고 나머지는 제대로 전공 일자리조차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인도나 중국, 동구 출신의 연구인력들이 나머지 빈 자리를 채우게 될 수도 있다. 세계화 추세에 적응하는 것만이 대안임을 냉정히 받아들인다면 연구인력도 이 추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한 현장의 위기감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그리 시간이 많은 편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부의 원천이 흔들리고 R&D 경쟁력을 무기로 한 지금의 IT산업 경쟁력조차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소수의 대기업만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고 그 외에는 아무도 세계 시장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는 고만고만한 생계형 내수 중소기업으로 채워진 기형적인 경제 구조를 상상하는 끔찍함으로 이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빈민층으로 추락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10년 후에는 지식 근로자들의 일자리마저 외국인들에게 빼앗기는 현상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면서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도 뻔히 보이는 미래의 문제를 낙관 속에 시간을 보내다 해결하기엔 늦어버린 오늘의 문제로 닥치면 그제야 호들갑 떠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변대규 (휴맥스 사장) ceo@humaxdigit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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