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새 조달제도 시행 현실 반영해야

 올해부터 ‘다수공급자 물품계약제도(MAS)’로 바뀐 공공물품 조달 방식에 대해 IT업체들이 추가 개선을 강도 높게 요구하는 등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 초기부터 이처럼 이해 당사자로부터 개선 목소리가 강하게 나온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음이 분명하다. 정부가 새 제도에 대한 검증을 했으리라 믿지만 개선 요구가 나오는 것은 IT산업계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말해준다고 본다. 그런만큼 단순하게 시행 초기 나타날 수 있는 현상으로만 치부하기보다 새 제도 시행에 따른 각종 부작용이나 문제점을 다시 한번 정밀하게 점검해 개선할 점이 있으면 서둘러 고쳐야 할 것이다.

 지난 1월 시행에 들어간 MAS는 정부가 구매하는 물품의 공급업체에 대해 적격성 심사를 한 후 이를 통과한 기업과 모두 계약해 수요 부처가 이들 복수 계약업체 중에서 사업 목적에 적합한 물품을 공급할 업체를 직접 선택하도록 한 것으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조달 방식이다. 일종의 자유조달경쟁시스템이어서 공급업체들로서는 적정한 가격에 납품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품질향상 및 사후서비스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고객인 정부 부처는 고품질 제품과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고객과 기업 모두 상생할 수 있는 구매제도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과거 최저가 입찰 방식에 따른 부작용도 상당 부분 없앨 수 있는 제도로 판단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IT업체들이 이 같은 선진국형 제도에 대해 반발할 명분은 없다. 따라서 반발은 제도 자체보다는 시행 과정상 나타나는 문제점이라고 본다. IT업체들도 이 제도 도입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단지 시대에 뒤떨어지는 세부 기준이 제도 자체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장 계약을 해야 하는데 세부 기준이 현실과 지나치게 괴리돼 불가피한 업무와 비용이 발생한다니 IT업체들이 반발하는 것도 당연하다.

 IT업체들이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안 가운데 하나가 일부 조달품목의 사양과 기준이 산업계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시중에 거의 유통되지 않는 과거 사양의 제품이 버젓이 조달품목에 올라 있고, 소매시장에서 구하기 힘든 소프트웨어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달체제의 허술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당국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OA 부문에 대해 공급업체 적격성 심사를 마치고도 해당 수요 부처에 이를 제대로 통보하지 않아 납품계약도 하지 못하고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고객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으나 운용 면에서는 아직도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IT 수요 가운데 공공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30%를 상회할 정도로 높다. IT업체들로서는 이런 공공조달 시장이 안정적인 공급처인 데다 자금 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내수가 침체된 상황에서는 ‘오아시스’나 마찬가지다. 새 제도의 시행착오가 길어지고 산업계와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IT업계는 어려워진다는 점을 정부는 인식해야 한다.

 차제에 MAS의 시행 초기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 즉 원래 뜻과는 다르게 가격경쟁을 부추겨 합리적인 가격체제를 무너뜨리는 등 조달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만한 요인이 있는지 철저히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또 수요기관이 물품에 대한 선택권을 가져 시장에서 선호하는 기업, 사후서비스가 잘되는 물품만을 선택할 경우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이 불리하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만큼 이에 대한 해결책도 찾아야 할 것으로 본다. 각종 중소기업 제품 우선 구매제도가 있지만 말 그대로 권고 수준에 머물 정도로 겉돌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