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디지털정책 선교사

IT코리아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해외로부터 문의가 많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도 외국 인사들의 내방이 잦고 원장인 나를 직접 초청하는 국가도 적지 않다. 덕분에 지난 2년 동안 일본, 중국, 아시아의 개도국들은 물론이고 미국, 중남미, 유럽, 오세아니아 등 20여개 국가 인사들과 협력하느라 제법 바빴다.

 그러나 방문 외빈들이나 초청강연 의뢰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사실 딱 한 가지다. 한국을 IT강국으로 만든 정책적 비결이 과연 무엇이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 발표나 설명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정보통신부가 정보화촉진기금 조성과 함께 앞장섰던 정보문화운동, 사이버아파트 인증제도, 전자정부구축 등 성공한 정보화 정책을 소개한다. 다소 모험적이었던 TDX 교환기 개발과 이어진 CDMA상용화 성공, 인터넷 보급을 위한 낮은 요금제도와 경쟁시장을 촉진한 산업정책도 큰 효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세계에서 가장 PC를 잘 쓰는 나라’를 약속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이 주효했다고 강조한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이라고 알려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일화를 전하노라면 제법 공감하는 눈치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지는 내 말이 그들에겐 뜻밖이다. 한국사회의 병폐였던 학부모의 ‘치마 바람’, 참을성 없는 ‘빨리 빨리’ 민족성, 쉽게 뜨거워지는 ‘냄비’ 근성, 세 명만 만나면 못말리는 ‘고스톱’이 IT문화 창달에 결과적으로는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소위 한국인의 ‘IT유전인자론’이다. 대단히 흥미롭단다. 동네방네 게임 열기 높은 PC방, 24시간 가동되는 수백만개의 사이버 커뮤니티,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파’식의 휴대폰 구매 선풍, ‘대충대충’이라도 바삐 출시되는 모방상품들, 전통조차 파괴하는 젊은 벤처인들, 삼성·LG 등 재벌 간의 과열경쟁 등도 모두 한몫했노라고 하면 헷갈리는 표정이다. 게다가 하느님이 보우하사 운까지 따라준 결과이므로 똑같은 정책을 펼쳐도 한국의 성공을 반복할 수 없으리라고 결론내리면 어색한 미소를 짓고 만다.

 제법 장황하게 들릴 수도 있는 내 설명의 의미는 사실 단순하다. 좋은 정책은 국가를 부흥시키지만 나라마다 나름의 문화와 여건이 존재하므로 모방 아닌 맞춤식 정책을 추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한다면 KISDI가 정책수립을 돕겠다는 제안이다. 결국 난 ‘IT정책선교사’를 자임하며 열심히 IT코리아 사상을 전도하기 위해 여러 국가를 상대해 온 셈이다. 이런 노력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KISDI는 국제 IT컨설팅을 본격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베트남의 ‘전자정부 로드맵’을 그려주었고, 지금은 미얀마의 정보통신정책을 수립중이다. 정보통신부의 전략에 따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자문에도 응했다. 콜롬비아, 캄보디아, 카자흐스탄, 몽골 등도 관심이 있단다. 교육훈련도 활발하다.

 이 같은 IT정책 선교의 일차적 목표는 국제적 정보격차 해소에 있다. 그러나 정보시스템을 기증하고 IT평화봉사단을 파견하여 PC교육을 해주는 식의 단편적 도움은 아니다. 그 나라에 맞는 IT정책 수립을 돕는 것이 본질적인 정보격차 해소책이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한국인의 우수성을 만방에 알림과 동시에 대한민국을 세계 속에 우뚝 세우고 싶다. 나아가 우리 기업들의 수출 전진기지를 개척하는 데도 앞장서고 싶다.

 ‘주식회사 IT코리아’의 회장은 대통령이고 사장은 정통부 장관임에 분명하다. 홍보는 정부가, 마케팅은 여러 관련 기관들이, 판매는 기업들이 이미 맡고 있다. 따라서 난 숭고한 IT선교사 직분에 충실하련다. IT정책을 전도하고 IT말씀을 전파하는 데 더욱 노력할 예정이다. 아무쪼록 우방 개도국들이 감화되어 IT문명국가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주헌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johnhlee@kis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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