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부에서는 벤처 지원대책 중의 하나로 앞으로 3년간 10조원을 투입하고 패자부활전을 통해 재기의 기회를 주겠다고 발표했다. 거품 논란과 대주주 비리 등으로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사그라졌던 벤처 열기를 다시 살려내서 경기를 회복시키겠다는 의지다. 패자부활전이란 용어는 스포츠 영역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지만 정치계나 경제계에서도 한때는 패자였지만 재기해 정상에 우뚝 선 예는 대단히 많다. 개인적으로도 누구에게나 패자부활전에 비유될 만한 작고 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정책에도 패자부활전을 도입해야 한다. 요즘 우리나라 먹거리 창출을 위해 기술을 개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개발할 기술이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누군가가 어떤 기술을 개발하자고 제안하면 “이미 개발사업을 완료한 기술입니다” “과제로 지원하기에는 중복 지원되는 기술개발사업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미 지원돼 개발된 그 많은 기술은 지금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기술개발에 성공한 사업이었던가 아니면 실패한 사업이었던가. 성공한 기술이라면 지금 왜 사업화하지 못하는 것인가. 만약 실패한 기술이라면 이제는 개발 필요성이 사라져 버린 기술이기에 재도전을 하지 않는 것인가.
보고서 속에서만 남아 있는 그 기술개발의 흔적들을 다시 살펴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렇게 기술개발사업을 진행했지만 뚜렷한 결론을 못 내리고 사라져 버린 현상에는 우리나라 연구계에 거품이 많기 때문이다. 기술개발사업의 대상기술과 지원예산을 공고해 모집한 제안서에는 외국 선진연구기관보다 우수한 기술개발 사양이나 더 큰 규모의 기술개발 항목들이 제시된 경우가 많다.
이는 10분의 1 정도 되는 예산과 절반이나 단축된 개발기간으로 앞서 달려가고 있는 선진 경쟁 연구기관을 따라잡겠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기술개발 초기부터 거품이 있는 것이다. 이 거품현상으로 인해 많은 차별성 있는 독창적인 기술개발 제안이 동일시 취급돼 파묻히고 있다.
이러한 거품현상은 제안자·평가자·연구관리기관 모두의 책임일 것이다.
기술개발사업에서도 거품을 걷어내야 할 것이다. 패자부활전을 통해 거품도 걷어내고 보고서 속에서 꾸물거리는 작은 성과들이 훨훨 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앞으로는 기술개발계획서나 결과보고서의 내용이 해당 세부 기술의 목표나 결과가 명확하고 정량적으로 표현되고 평가되는 방안으로 구성돼야 할 것이다.
기술개발 지원책에도 패자부활전을 도입해야 한다. 보고서 속에 묻혀 있는 기술들을 되돌아보고 왜 아직까지 보고서 속에 묻혀 있어야 하는지를 꼼꼼히 따져서 아직도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이라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기술개발 2라운드를 지원해야 한다. 2라운드는 1라운드에서 뛰었던 선수를 기용할 수도 있고 새로운 신인으로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호 선의의 경쟁을 통해 경기 우승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성공한다면 복수로 대표를 선발하면서 소모된 예산이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기술개발사업은 사업초기 단계에서는 자유경쟁이지만 사업이 시작되면 연구책임자에게 연구개발 권리를 독점적으로 지원하는 형태다. 사업 시작 이전뿐 아니라 사업진행 도중에서도 자유경쟁을 도입해야 하며, 기술개발사업의 전 과정을 경쟁체제로 만들어야 경쟁력 있는 기술이 개발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기존에 진행돼 온 모든 기술개발사업에 대해 옥석을 가리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기술군을 발굴, 해당 기술군에 대한 기존 사업 결과를 철저히 분석해 패자부활전을 마련하고 이에 적합한 선수군을 발굴해야 한다.
<김선일 한국과학재단 기초연구단장 (한양대 교수) familly7114@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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