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겨울은 스산하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기자가 도착한 후 일주일 동안 단 한번의 햇볕도 보지 못했다. 우중충한 겨울은 가끔 눈 같지 않은 눈이 내리고, 이윽고 비로 변해 더욱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새삼 한국의 기후가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실감했다. 반면 이러한 날씨 때문에 산업혁명이 발생했고 공업이 발전할 수 밖에 없었구나하는 생각도 겹쳐 스쳐갔다.
날씨만큼 유럽의 서쪽 끝에 위치한 섬나라 아일랜드는 차분하다. 한때 ‘유럽의 변방’, ‘유럽의 뒷골목’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듯 ‘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로 낙인 찍혀왔다. 영국의 지배라는 아픈 역사가 우리나라 고난의 역사와 흡사하다. 그래서 더욱 친근감을 갖게 한다. 국민성도 비슷하다. 흥이 많고 다혈질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수위의 술 소비량을 자랑하듯, 아이리쉬(Irish) 역시 술에 관한한 한국과 정서가 비슷하다.
경제 부흥을 위한 노력도 비슷하다. 우리나라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시작했듯, 아일랜드는 이 보다 다소 늦은 1987년 ‘사회협약’이란 국가부흥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선 상장, 후 분배’의 국민적 공감대를 도출하고 노사정의 협약을 기초로 아일랜드 정부는 국가 부흥 프로그램을 공포했다. 적은 인구, 뒤늦은 경제 개발을 만회하기 위한 노력은 ‘IT’라는 출구를 찾게 되고 현재는 유럽에서 IT가 가장 발전한 나라로 거듭나게 됐다.
△기네스맥주에서 디지털 강국으로
아일랜드의 대표 기업은 흑맥주로 유명한 기네스 그룹이다. 기네스는 아일랜드 를 지탱하는 경제의 한 축으로 부상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기네스맥주 공장의 한켠이 디지털 허브단지로 바뀌고 있다. IT로의 대 변신이 시작된 것이다. 집적화 단지가 없는 아일랜드로서는 대표산업으로서의 상징성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과거 기네스 맥주가 아일랜드 수출의 대표 상품이었다면 지금은 소프트웨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40%에 달한다. 고용은 9만명으로 400만명 정도가 전체 인구인 아일랜드로서는 주력산업이 아닐 수 없다. 소프트웨어의 연간생산액은 500억 유로. 이 가운데 80%가 넘는 420억 유로를 수출하고 있다. 주요시장은 EU와 미국시장이다. 미국 할리우드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3D그래픽 솔루션업체인 ‘하복(HABOK)’이 대표적인 업체다. 기술성을 인정 받아 소프트웨어의 종주국인 미국시장에서 촉망받는 업체로 자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시장 개척에도 본격 나서고 있다. 아일랜드기업진흥청 시장개척부 이사인 앨런 버클리(Alan Buckley)씨는 “‘잠자는 용’이라 불리우는 중국시장과 우수한 인재와 성장잠재 가능성이 높은 인도시장에 초기(Early stage)에 진출함으로써 문화가 다른 시장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시아권 시장은 현재 아일랜드 IT수출의 10%에 불과해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지만 앞으로 성장 가능성 만큼은 가공할만 하다.”고 강조했다.
보안솔루션업체인 AEP시스템즈의 재무담당 임원(CFO)인 크리스 미한(Chris Meehan)씨는 “미국회사에 근무하다가 고국인 아일랜드의 IT산업이 부흥하는 것을 보고 귀국했다”며 “아일랜드가 IT강국으로 나가기 위해 초석이 된다는 의지로 기업경영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산학연으로 뭉치다
아일랜드 IT산업의 특징이라면 강한 연대의 ‘산·학·연’프로그램이다. 아이디어 수준에서 기업의 형태를 갖추기까지 체계적인 정부 지원이 이루어진다. 아일랜드 기업진흥청 캠퍼스 인큐베이션 담당 부장인 그래인 니 유드(Grainne Ni Uid)씨는 “대학내 창업은 교육에서부터, 자금, 인력,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지원된다”며 “IT산업의 핵심이 인재인 만큼 우수한 인재를 발굴해 유망한 기업을 많이 만드는 것이 아일랜드의 앞날을 밝게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아일랜드내 창업 인큐베이터센터는 19개 정도가 있으며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지역별 기술연구소를 내년까지 16개까지 늘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각 창업 인큐베이터센터내에는 20∼30개 정도의 기업들이 입주해 각가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아일랜드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꾼으로 커가고 있다. 창업을 지원하는 자금원은 다양하다. 아일랜드내 최대 규모의 창업인큐베이터인 더블린시립대학(UCD)의 Nova UCD는 초기 자금 10만 유로 규모로 AIB뱅크, 아더콕스, 에릭슨, 아일랜드기업진흥청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
아일랜드가 창업보육에 열을 올리는 데는 ‘토착기업’에 대한 강한 집착이 서려 있다. 산업기반이 글로벌기업이다보니 나오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에 따라 아일랜드 정부는 우리와 같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IT 와 생명공학을 정하고 올해 1억달러 규모로 토착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5년 동안 7억5000만 달러를 지원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디지털허브를 꿈꾸며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은 지금 한창 공사중이다. 기네스 맥주 공장부지에 들어서는 ‘디지털허브’를 만들기 위해서다. 디지털허브가 구축되면 그동안 흩어져 있던 IT업체들이 모이게 돼 명실상부한 IT집적단지가 된다. 이 단지는 기네스 그룹이 더블린 시에 기증한 부지로 총 9 에이커에 이른다. 현재 2 에이커는 기업과 교육시설이 들어설 자리로 개발중이다. 나머지 7에이커 역시 상업용 입주단지로 곧 개발에 들어간다.
디지털 허브는 모든 IT의 산실 역할을 하게 된다. 대학과 연계된 기술개발의 상품화와 기술 거래소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특히 교육시설은 지역주민뿐만아니라 IT교육의 장으로 누구에게나 개방해 미래의 IT주역을 길러내는 산파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IT와 자연스럽게 교감하면서 산업으로 입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는 아일랜드가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도 우수한 인적자원과 맥을 같이 한다. 영국을 제외하고 유럽국가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국가라는 사실과 풍부한 인적자원은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는데 더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기업진흥청 이명행 서울 지사장은 “한국의 IT산업과 아일랜드의 IT 산업이 서로 보완점을 찾는다면 지구 저편에 있는 나라지만 교감할 부분이 많다”며 “투자와 기술·시장교류를 통해 양국간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부분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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