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에서 1966년 사이 나는 박사후연수과정을 당시 세계 핵융합 연구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던 프린스턴대학교의 프라즈마연구소에서 밟았다. 프린스턴대학에는 그 유명한 프린스턴신학교 뿐 만 아니라 전세계 이론과학들이 선망하는 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가 자리 잡고 있다. 프린스턴고등연구소는 아인슈타인 박사, 소련의 멸망을 정확하게 예측한 조지 케난 박사, 컴퓨터를 발명한 수학자 폰 노이만 박사, 원자탄 개발의 이론적 지휘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 등 20세기 이론물리학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최고의 과학자들을 거느렸으며 전 세계의 학자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곳이다.
여기서 목요일 오후에 열리는 정례 물리세미나는 20세기 물리학의 첨단을 논하는 자리였다. 내가 프린스턴 플라즈마연구소를 택한 이유 중 하나는 고등연구소 연구원들과 접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고등연구소를 통해 최첨단 물리이론에 접하면서 플라즈마연구소에서는 가장 앞섰던 복잡 정교한 실험 장치를 사용하며 연구를 할 수 있었으니 나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수준의 박사후연수과정을 밟았던 것이다. 특히 고등연구소는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바 한국의 이론과학을 이끌자면 최고의 연구 분위기를 조성하고 젊은 과학자들의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발상을 검증할 수 있는 고등연구소와 비슷한 곳이 우리나라에도 꼭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당시에 고등연구소에는 우리나라 출신 이론물리학자인 이휘소 박사와 수학자인 권경한 박사가 있었다. 또한 프린스턴 소재 산업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던 전선웅 박사, 전학제 박사(전 과학기술처장관) 등도 만날 수 있었다. 귀한 추억을 남긴 젊은 시절이었다.
1994년 과학기술처장관을 다시 맡게 된 나는 우리나라에 고등연구소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장인 필립 그리피스 박사를 초빙했다. 수학자인 그리피스 박사는 한국의 과학기술이 모방에서 창조로 발전하려면 고등연구소가 꼭 필요하며 지금이 적기라고 평가했다. 확신을 갖게 된 나는 고등과학원(KIAS, Korea Institute for Advanced Study)의 설립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고 홍릉에 소재한 KAIST 서울캠퍼스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서울 KAIST에는 이미 연구원 운영에 적합한 건물이 있었고 연구원들이 거처할 수 있는 구내 아파트도 있었기 때문에 고등과학원설립은 순조로웠다.
석좌 기금을 모아서 최고의 석학들을 모셔온다는 구상에 재계 지도자들은 긍정적인 협조를 해주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50억원을, 대우의 김우중 회장과 기아의 김선홍 회장은 각각 10억원의 석좌기금을 약정해주었다. 한국의 기초과학 진흥이 가시화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내가 프린스턴에서 다짐했던 꿈이 30년 만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고등과학원은 이제 세계무대에서 주목받는 연구기관이 되었고 수학, 이론물리학 및 계산과학에서의 명성은 우리나라의 자랑거리이다. 물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와의 협력도 이루어지고 있고 고등과학원에서 열리는 각종 학술회의는 우리나라 과학의 발전에 큰 기폭제가 되고 있다.
kunmochung@ka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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