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정근모 과학기술한림원장(4)

(4)한국형 표준원자력발전소 설계 

 현재 19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전해 소요전력의 40% 이상을 저렴하고 안전하게 공급하고 있는 원자력발전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큰 공헌을 해 왔다. 재생에너지원이 충분히 경제적으로 개발되어 활용될 때까지는 원자력발전으로 얻어지는 신에너지가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하고 실질적인 대규모 신재생에너지원임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1968년 고리1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결정한 것은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 여건으로서는 획기적이었다.

 자금도 없고 기술도 없던 우리로서는 외국자금을 빌리고 외국기술을 도입하여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 건설된 다른 산업 시설들처럼 한전은 턴키 방식으로 웨스팅하우스사와 계약해 고리 1호기를 건설, 1978년에 처음으로 우리나라는 원자력 상업 발전을 시작했다. 두 번째 원자력발전소인 월성 1호기는 캐나다 기술을, 80년대에 들어서는 프랑스 기술을 도입하면서 우리의 원자력발전 사업은 국제 원자력발전 박람회 같은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이 때 원자력발전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극대화하려면 표준설계를 개발해 국가적인 원자력기술자립과 사업의 경제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국내 기술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당시 프랑스는 원자력발전소 표준설계사업을 가장 성공적으로 시행한 나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원자력회사들은 그들이 선택하고 투자한 기술을 선호하고 보호해야 했으며 그를 위한 기술 논쟁은 합리성이 결여되기까지 했다.

 설계 개념, 기술자 양성, 규제 효율화 등 모든 면에서 획기적인 기술개혁을 이룰 수 있는 설계표준화사업을 수행하려면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기획하고 나중에는 소유, 운전하는 발전회사들의 결단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한국전력기술(KOPEC)의 전신인 한국원자력기술(KNE)의 사장으로 선임되었던 1982년에 KNE에는 재정적으로는 파산 위험까지 도사리고 있었고 회사의 비전도 뚜렷하지 못했던 시점이었다. 당시 성낙정 한전 사장이 부탁할 것이 없냐고 친절하게 물어왔기에 나는 초대전임(專任) 사장으로서 원자력뿐 아니라 전력기술 전반을 맡기 위해 KNE를 KOPEC으로 개명하고 한전이 발주하는 모든 발전소 설계사업의 수주 우선권을 달라고 청했다. 개명은 즉시 되었지만 수주 우선권을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존 업체들의 반발 때문에 시간과 뚜렷한 명분이 필요했다. 재정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기술회사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확고한 비전사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과학원 부원장 때 STPI 연구 동료였던 조경목 과학기술부 차관에게 원자력발전소 표준화에 대해 설명했고 KOPEC은 과학기술부 특정연구개발사업으로 1983년부터 2년간 원자력발전소 표준설계 1단계 사업을 수행할 수가 있었다. 이 1단계 사업이 끝나자 한전 임원진의 적극적인 동의와 후원 아래 표준원자력발전소 설계사업이 본격화됐다. 그 결과물이 오늘날 우리의 원자력사업을 세계 수준으로 격상한 한국형 표준원자력발전소(KSNP:Korea Standardized Nuclear Plant)다. 우리나라 원자력계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 정책적 단안과 원자력발전 기술의 습득, 소화, 종합화 과정을 평생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할 것이다.

 kunmochung@ka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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