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루브르박물관 입구에는 유리 피라미드가 서 있다. 올해 출판계 최대의 화제작인 ‘다빈치 코드’에서도 그 상징성을 잘 묘사하고 있거니와, 필자 역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 바로 3년 전 파리에서 열린 개인정보감독기관 국제회의에 참가했을 때였다.
주최측인 프랑스 개인정보감독기구(CNIL)가 그곳에서 회의참석자를 위한 만찬을 베풀었다. 일반관람이 끝난 저녁 7시에 시작된 행사는 모나리자 명화를 감상하는 1부와 프랑스 육군 합창대의 샹송과 팝송 메들리를 들으며 유리 피라미드 아래 중앙홀에서 정찬을 즐기는 2부로 이어졌다.
필자는 그때 프랑스의 개인정보보호가 단지 법률 규정에 그치지 않는 일종의 문화적인 코드라는 것을 웅변으로 설득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프라이버시 등 개인의 인권을 크게 유린당한 경험이 있기에 개인정보보호 문제를 기본권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와 여당, 시민단체가 제각기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공통점도 있지만 내용이 사뭇 달라 국회 심의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개인정보 침해사범을 단속·처벌하고 심지어는 집단소송을 하는 것까지 예정한 법안도 제출되었는데, 필자는 우리가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세련된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정보 침해가능성을 안고 있는 정보기술(IT)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을 적용한 제품과 서비스도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반면 법률과 제도는 변화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신기술의 발전과 시장의 거래를 따라가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이 기술진보에 간섭하거나 시장거래를 규제하려 든다면 IT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민등록증에 채택하기로 했던 스마트카드다. 개인정보침해 우려 때문에 우리나라는 상당한 기술을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스마트카드 도입을 포기하였고 오늘날 엄청나게 확대된 해외시장을 놓치고 말았다. 그때 만일 새로운 기술개발로 문제를 극복하려 했다면 오늘날 스마트카드와 관련된 해외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들어 거론되고 있는 것은 전자태그(RFID)다. 현재 한국정보보호진흥원에서 프라이버시 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중이나 이에 대해서도 업계와 시민단체의 입장이 나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업계에서는 RFID도 어느 상품에나 붙어 있는 기존 바코드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민단체에서는 RFID에 부착된 마이크로칩에 무엇을 저장하고 어떠한 외부 시스템에 연결하느냐에 따라 가공할 만한 개인정보침해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아직 RFID 기술이 초기 개발단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폐해를 우려한 나머지 법제로써 이를 규제하려 든다면 관련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주된 수출품목은 정보통신제품과 기술이다.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IT산업의 모멘텀을 계속 유지하려면 과도한 규제는 피해야 한다.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을 무조건 법률이나 제도로 막으려 하지 말고 새로운 기술로써 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기술의 발전과 관련된 시장의 확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로부터 정보통신 관련 기술을 전수받기를 원하는 나라가 많다. IT법제를 수출하는 것이 당장은 돈이 안될 것 같이 보여도 그 운용요원을 훈련시키고 관련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수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수출시장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
소설 다빈치 코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영화화가 추진되고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가 새로운 순례장소가 되고 있다고 한다. 국산 IT제품과 서비스를 해외에서 많이 찾도록 하기 위해서는 IT법제와 기술, 시장의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훤일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 onepark@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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