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젠 정통부가 나서라

산업은 정치적 파워게임이 아닌 먹고 사는 문제다

 “차라리 반포대교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은행 융자도 모자라 동창생, 친지들 돈까지 닥치는대로 끌어 모아 마지막 승부에 나섰는데 허탈할 뿐입니다. 벌써 금융권에선 상환 독촉이 시작됐고 그동안 조금만 참으라며 월급을 미뤄왔던 직원들 볼 낯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야 남의 일이니 내 밥그릇 먼저 챙기는 것을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우리 중소 벤처기업들의 사정은 너무 절박합니다. 대통령은 해외나가 ‘기업이 나라’고, ‘한국 대표’라며 응원하지만 정작 기업에 돌아오는 것은 목줄 조이는 일 뿐이니 환멸 그 자체입니다. 이 참에 회사 접고 이민이나 가렵니다.”

 “국민 전체의 이해와 공익성을 위한 결정이라니 우리는 국민도 아닙니까. 수천, 수만의 가장들이 가족의 생존을 걸고 연구하고 개발하고 투자했습니다. 이 정부는 도대체 누구의 정부입니까.”

 방송위가 위성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의 지상파 재전송을 사실상 무기 연기한 이후 만나는 관련 기업인들마다 울분과 한탄을 폭포수처럼 쏟아 낸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예의 갖춘 표현은 이 정도지만 술이라도 한잔 들어간 후의 격한 감정은 차마 옮겨적지 못할 수준이다. 그들은 대부분 이 나라에서 기업한다는 것 자체에 절망과 회한을 토로한다.

 정부의 중요 정책은 일정부분 찬반 논란을 야기한다. 하지만 이번 방송위 결정은 상대방을 납득 혹은 승복시키기에는 논리가 너무 빈약하다. 국민으로서는 지상파 재전송이 그리 엄청난 문제인지 알 길이 없다. 무언가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고 그걸 통해 좀 더 즐거운 삶을 보장 받으면 그만이다. 더욱이 신규 서비스가 우리 경제의 동력인 IT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투자를 활성화해 경제를 견인해 준다면 기꺼이 박수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이 누구에게 유리한지는 따질 필요도 없다. 혹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한다든가, 공익에 현저한 피해를 준다면 정부가 알아서 규제할 것이라 믿고 있다. 특정 재벌에 유리한 방향이라면 사업자의 지분 구조를 규제할 수도 있다. 도대체 무슨 정책이 중소기업, 벤처죽이기라는 비판만 받는 지 국민은 더욱 어리둥절할 뿐이다.

 물은 엎질러 졌다. 적어도 산업계에서는 방송위에 대한 기대는 이번 일로 무덤에 보냈다. 몇몇 방송사 노조에 휘둘려 정치적 눈치보기에 급급하다는 비난도 이젠 지쳤다. 통신·방송 융합의 ‘우주적 트렌드’를 이해하고 방향을 제시할 것이란 기업인들의 희망은 이미 허망한 꿈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자연히 정보통신부에 눈길이 간다. 그나마 이 정부에서 국민들 먹거리를 걱정하고 준비하는 곳이 정통부다. 통신·방송 융합의 실체를 이해하고 정책으로 담아내려 노력하는 부처다. 게다가 정통부는 실전경험도 쌓았다. 디지털 TV 표준을 둘러싼 방송노조의 집요한 반발과 견제에도 굴복하지 않고 설득과 타협을 이뤄냈다. 시장과 기술, 미래를 제대로 볼 줄 아는 관료와 부처의 뚝심을 보여줬다.

 통방 컨버전스 시대에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정책적 시험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방송위에 우리 IT의 내일을 맡길 수만은 없다. 정통부가 앞장서 의견도 수렴하고 산업계의 목소리도 대변해야 한다. 정치적 이해에 매몰된 부처나 집단이 있다면 가르치고 이해시켜야 한다. 다행히 진대제 장관도 국감에서 “앞으로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젠 정통부가 나서야 한다. 산업은 정치적 파워게임이 아닌 먹고 사는 문제다.

 <이택 편집국 부국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