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무너지는 ­IT

가히 충격적이다. 최근 유명 시중 은행이 앞으로 IT업종에 대출을 가급적 피하라고 공식 선언한 것은 정말 초유의 일이다. IT가 이땅에 뿌리내린 후 아마 처음 당하는 일인 것 같다. 국가 성장동력, 첨단수출전략산업, 미래의 수종산업 등의 수식어로 포장돼왔던 IT산업이 어쩌다가 이지경까지 왔는지 그저 답답할 뿐이다.

 단순히 IT산업에 대한 홀대가 섭섭해서가 아니다. IT나 인터넷 하면 돈 못 빌려줘서 안달이던 시절이 그리워서 하는 얘기도 아니다. 우리나라가 먹고 살기 위해 현 경기침체를 어떻게 돌파하고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대답이 너무나도 자명해서 하는 소리다.

 IT산업을 받쳐온 주요 축들이 무너지는 소리는 이미 곳곳에서 들려왔다. 문제는 수없는 예고음과 경보음에도 불구하고 예방이나 처방이 없었다는 점이다. 학교만 봐도 그렇다. 요즘 대학가는 컴퓨터 관련학과의 폐지바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부 지방대학에서 시작된 이 같은 바람은 수도권대학까지 확산중이다. 한때 입시생 선택 1순위였던 컴퓨터 관련 학과의 폐지바람은 그 후유증이 수년 후 전문인력 수급 불균형으로 나타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분명 우려할 만하다.

 코스닥시장의 경보음은 더욱 심각했다. 상당수의 IT종목들이 무려 50여주째 최저가 행진의 주역을 강제당했는 데도 불구하고 그저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 중엔 올 들어 단 한개의 제품도 못 판 업체도 있다. 코스닥등록업체가 이 정도면 대다수의 IT관련 벤처업체들의 실상은 시쳇말 로 ‘안 봐도 비디오’인데도 말이다.

 전혀 다른 모습도 있다 .불과 2달 전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진대제 장관을 포함한 각료들이 모여 우리나라를 유비쿼터스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호언했던 광경이다. 마치 수년 후면 정말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IT의 혜택을 누리는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살 것 같은 환상을 줬던 모습이 또렷하다. 하지만 유비쿼터스 강국은 결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실력있는 전문업체들이 좋은 솔루션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가능한 것이다. 높은 사람들의 립서비스나 839라는 컨셉트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좋은 인력을 배출하는 학교가 망가지고 업체들의 주가가 바닥치고 마지막 은행권이 운영자금의 명줄마저 끊는 이 같은 상황에선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다.

 수출효자상품, 국가 전략산업으로 칭송받던 휴대폰 산업만 봐도 현 정책담당자들의 안일함은 드러난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곤 휴대폰은 그야말로 ‘헤픈’산업으로 몰렸다. 텔슨 ,맥슨 등 수천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중견기업들이 앞다퉈 넘어갔다. 기술경쟁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시장이 없어서도 아니다. 이들 중 일부는 몇 억달러의 오더를 쥔 채 무너진 곳도 있다는 후문이다. 상당수는 단지 유동자금이 달려 넘어져도 주무부처는 물론 모두가 나몰라라식이다. 우리업체가 떠난 빈 곳에 중국의 신흥업체들이 자리잡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현재의 어려움이 정말 망해야 할 업체들이 도태되는 구조조정의 불가피한 진통이라면 참고 버티겠는데 이건 모두가 그냥 망가지는 국면이다. 정책은 실종과 실기를 거듭해 업계만 고스란히 고통을 당하는 것 같다.” 한 중견 솔루션업체 사장의 말이 더는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

 생산이 늘어 내수로 테스트베드를 만들고 수출로 돈을 버는 것이 우리나라의 유일한 생존방식이다. IT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그나마 중국에 비해 기술장벽이나 부가가치를 확보하고 있을 때 이를 극대화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정책의 존재이유’도 분명 여기서 찾아야 한다. IT가 무너지면 무엇으로 국가경쟁력을 살릴 것인지, IT산업 관계자들의 한숨소리가 더 깊어져서는 안 된다.

<김경묵 부국장 대우 IT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