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에 과연 문제가 있는지를 두고 정부와 언론이 대립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한국경제가 심각하게 곪아가고 있으며 더는 대증요법으로 치유되기 힘들다고 걱정하고 있다.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인식이다. 그칠 줄 모르는 내수침체, 고용없는 성장,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투자 등을 대표적인 이유로 꼽고 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는 한국경제가 5%라는 견실한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언론들이 과대포장으로 오히려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과 직접 만나 투자확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통령과 언론의 대립은 끊임없이 계속돼 왔다. 언론은 사사건건 대통령의 언행을 트집잡았으며 대통령도 언론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의 대립은 예전과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전에는 주로 대통령 개인이나 주변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경제라는 엄연한 현실을 두고 현격한 인식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하나이지 둘일 수 없다. 그런데도 이처럼 인식이 다르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양측은 현실인식의 골을 메우려 하기보다 감정의 골만 깊어가고 있다.
지금이 정말 위기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통령과 언론이 말하는 위기의 본질이 서로 다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이 IMF때와 같은 위기일 수는 없다. 그러나 위기가 아니라는데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경제의 본질적인 문제는 자꾸만 꺼져가는 성장엔진에 있다. 한국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성장의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면에서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위기는 위기다. 또한 위기의 해법도 지금 당장 찾아야만 한다. 시간이 늦으면 블랙홀에서 탈출마저도 힘들다.
MP3 플레이어로 세계시장에 우뚝선 레인콤은 코스닥에서도 황제주로 대접받고 있다. 하지만 레인콤은 애초부터 한국이 아닌 중국에다 공장을 지었다. 국내가 아닌 해외 공장만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첫 사례일 것이다. 사장에게 한국에다 공장을 짓지않은 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예상외였다. 첫째가 고임금도, 규제도 아니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였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중국 직원들을 고려해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제품을 설계할 만큼 회사에게 한국은 사업하기 곤란한 곳이었다.
일할 사람이 없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다. 중소기업들은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해야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지경이다. 대기업들도 노동인력이 거의 필요없거나 고급 인력이 필요한 곳에만 투자를 감행하고 있을 뿐이다. 일할사람이 없어지는 현상은 이미 일본이 10여년 전에 겪은 일이다. 중국이 세계적인 제조기지로 부상하기도 전이지만 일본은 이로 인해 10년을 잃어버렸다. 한국은 더욱 불리하다. 중국이라는 블랙홀과 까다로운 규제와 미흡한 행정서비스,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 남북문제 등이 겹쳐있다. 한국이 이같은 상황에서 고용없는 성장이라도 지속하고 있는 것은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운좋게 디지털이라는 새 물결이 탈출구를 제공했다. 고도의 원천기술과 뛰어난 소재·부품·장비산업,그리고 죽어가던 세트산업마저 고급인력의 일자리로 탈바꿈되고 있다. 불행히도 우리에겐 원천기술이 아직은 일천하다. 일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을 다시 불러모을 고급 일자리가 충분치 않다. 게다가 고급인력마저도 줄어들고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만 심화되고 있다.
지금 한국경제가 위기냐 아니냐로 논쟁할 때가 아니다. 산업의 고도화와 인력의 고급화를 앞당기기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디지털산업부 유성호 부장 sh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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